<전문기자칼럼>학술회의 불참한 한국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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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꽤나 길게 느껴진 하루였다.
29일 조지아대에서 「남북한과 미국-새로운 3각 관계」라는 주제의 학술회의가 하루종일 진행되는 동안 기자는 물론 주최측이나 참석자 모두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 돌연 불참한 한국측 대표단은 그 시간에 어디서 어떤 기분이었는지 몰라도.
주최측인 朴한식 조지아대 국제문제연구센터소장은 한국측 대표단의 불참 이유가 혹시 잘못 전달되지 않을까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朴소장은 『남한측 대표들은 자신들이 회의에 참석하면 남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고 이 때 초래될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불참이유를 밝혔다』고 설명했지만 청중들은 쉽게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한 미국측 참석 인사는 기자에게 『어디서 많이 접해보던 행태아니냐』며 조심스런 농(弄)을 건네기도 했다.
그간 국제회의에서 북측이 주로 보이던 행태를 남측이 보였다는이야기였다.
반면 북측 대표단장인 이종혁(李種革)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한국측 불참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북.미 중심의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한껏 점잖게 말을 꺼냈다.
회의 내내 한국 정부를 직접 비난하는 발언은 없었다.
그러나 북측은 통일방안에서부터 북.미 평화협정의 정당성 및 북.미 관계의 장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넘나들며 자신들의 입장을 소상히 설명할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남측 입장을 대변하는 인사는 없었고 다만 미 국무부 관리의 발언중 조심스럽게 한국 입장을 대변하는 대목이 간혹 들어가곤 했다. 기자가 가장 놀랍게 느꼈던 것은 남한의 입장이 반영돼야만 할 사항들에 관해 북.미 양국이 오붓하게 입장을 교환하는 모습이 더이상 생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회의에서 미측 참석자가 지적하고 북한 인사도 공감을 표한 것들 중의 하나는 그간 남북한과 미국 관계의 「불균형」이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었다.그같은 논지가 혹 주최측이 개진하고자했던 바라면,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참한 남측 대 표단은 회의의소기 목적 달성에 일조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앞으로 빈번해질 북.미 접촉에서 이날과 같은 해프닝이 계속된다면 한.미 양국이 제의한 「4자회담」의 앞길이 험난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애턴스에서] 길정우 在美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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