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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페달 ①

중앙일보

입력

한창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릴 대학 4학년생의 마지막 여름방학. 한 캠퍼스의 조그마한 강의실에 네 명의 혈기왕성한 청춘들이 모여 앉았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노트북 모니터 속으로 뚫고 들어갈 정도로 집중한 채 취업사이트를 뒤지는 중이었다. 그러다 누군가 그 긴장감 넘치는 침묵을 깼다. “형들, 우리 자전거 여행이나 갈까?” 넷 중 막내의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뭐라고?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지독한 취업난의 시대,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독히도 여행해야 할 시절. 고민은 깊었지만 의외로 결론은 빨리 났다. 그래, 가 보자.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냐? 이진권(1979년생), 박현희(1979년생), 박수양(1980년생), 오성근(1982년생), 이렇게 네 남자의 자전거 일주는 결정됐다!


자전거 여행에 나선 네 남자- 이진권, 박현희, 박수양, 오성근

매일 토익 문제집과 씨름하고 날마다 대동소이한 자기소개서를 쓰느라 머리에서 온천이 들끓던 네 사람으로서는 사실 제법 큰 용기를 낸 셈이다. 취업의 문턱에서 누구나 느끼는 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전선에 배치된 느낌. 당장 토익 점수를 올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신선한 공기가 그들에게는 절실했다.

아, 굳이 자전거를 택한 이유? 어려서부터 자전거 매니어였다며 자전거 추억담을 늘어놓거나 김훈의 자전거 철학이나 자전거 예찬을 운운하며 멋지게 수사를 나열해도 좋으련만, 넷은 입을 모아 “체력은 남아돌았고, 밥값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처량 맞은 대답만을 들려주었다. 사실 자전거 여행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과감히’ 결정을 내린 면도 있다.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단 2박 3일의 일정, 출발점은 서울역, 경유지는 양평과 청평, 당초 목적지는 춘천.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만 보자면 딱 ‘기차 여행’으로 알맞은 이 코스다. 비용은 ‘달랑’ 1인당 3만원을 준비했다. 급작스런 여행이지만 경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규칙도 정해두었다. 통장과 신용카드는 절대 가져오지 말 것, 개인필요물품은 알아서 챙겨오기. 게다가 이 여행의 진짜 주인공인 자전거마저 알아서 챙겨야 할 개인물품에 속했는데, 이들은 정작 자신의 자전거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가깝거나 멀거나 아무튼 자전거가 있다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또 걸어 능력껏 자전거를 빌려야 했다. 멋진 싸이클 따위가 구해질리 만무했다. 바퀴만 굴러가면 무조건 감사한 일.

여행 당일 아침, 서울역에서 모인 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웃겼다’. 넷 모두 서로의 모습을 가리키며 한바탕 박장대소했단다. 누구는 손가락 부분만 잘라낸 면장갑을 낀 채 자전거를 타고 버티고 있었고, 누구는 마치 미라처럼 온몸을 손수건을 친친 감고 있었다. 그래도 모두들 더운 여름에 시작하는 자전거 여행이라고 자외선차단 크림은 덕지덕지 바른 모양이었다. 네 사람 얼굴은 모두 허옇게 뜬 듯했고 번드르르 기름이 흐르고 있었다.
그나마 박수양이 제대로 된 차림을 하고 있었다. 다소 민망할 정도로 꽉 끼는 하이키용 팬츠(일명 쫄쫄이 바지)와 안전모까지 갖추고 나온 것이다. 박수양이 한 벌 더 챙겨온 자전거 복장에서 셔츠는 박현희, 팬츠는 이진권이 나눠 입었다. 처음 자전거 여행을 제안했던 오성근은 입고 나온 그대로 면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었다.


여차저차 옷을 갈아입고 준비물을 다시 점검 한 뒤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이대로 고고씽!’,은 아니었고 출발 10분 뒤, 오성근의 타이어가 터졌다. 건장한 남자 넷은 펑크 난 자전거 타이어 앞에서 모두 네 살짜리 어린아이들이었다. 두어 시간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 헤맸다. 수리점을 만난 김에 네 명 모두의 자전거를 점검했다. 네 남자의 자전거를 받아 든 주인아저씨 왈, “거, 참, 겁도 없네. 이렇게 출발했다가는 모두 고생바가지야!” 전문가의 ‘눈높이’ 조언은 계속 이어졌다. “일단 타이어 바람을 적절하게 넣어야지. 펑크났을 때를 대비해서 장비도 챙기고, 타이어 펌프나 기본적인 공구도 준비해야지….” 이 정도에서 얘기가 끝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네 남자가 자전거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 다시 준비를 하기로 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계속 앞으로 나가는 걸 택했다. 모두들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라 하나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도 출발하자마자 타이어가 터진 게 다행이야. 소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친 거잖아.”

서울역을 출발한 그들은 자전거 수리판매점을 나와 한남대교 북단을 통해 한강변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한강변을 따라 구리까지 가 구리에서 국도를 탈 예정이다. 한강변의 자전거 도로는 북단과 남단 모두 뚫려 있다. 산책로뿐 아니라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된 한강변은 자전거 마니아들에겐 최고의 길이기도 하다. 이 정도 상식은 미리 숙지해 두고 나왔다. 정말 아무런 준비도 상식도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선 것은 아니었다.

자전거 도로라고 해서 단순히 쭉 뻗어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강을 가까이에 끼고 달릴 수도 있고, 풀발 사이로 나아갈 수도 있으며, 강둑 위로 페달을 힘껏 밟아도 된다. “와, 자전거 도로가 제법 잘 나 있구나!” 짧은 감탄이 이어졌다. 사실 도로 상황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페달을 굴려 속도를 낼 때마다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느낌이었다. 길을 가르는 것은 곧 바람을 가르는 것! 스치고 지나가는 도심 풍경들, 강의 정취, 자전거 위의 자유로움….네 남자는 한동안 흥분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젊은 기운을 마구 발산시켰다.


그렇게 거칠 것 없이 달리기를 두 시간…. 처음의 들뜬 분위기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사실 분위기만 가라앉은 게 아니라, 폐활량의 수위도 많이 낮아졌다. 강의실에 두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어도 피곤이 몰려오거늘, 별다른 보호 장비 없이 손바닥만한 삼각형의 안장에 앉아 두 시간을 달렸으니 지칠 만도 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속도를 크게 줄이거나 힘든 내색을 표하지 않았던 건, ‘사나이 자존심’ 때문이었다.

누구하나 먼저 쉬자는 말을 못하고 부지런히 두 다리만 움직였다. 역시 막내 오성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숨쉬기 힘들어! 조금만 쉬었다 가요.” 다들 마지못해 쉬는 듯 자전거에서 내려앉았지만 모두들 지친 기색에 얼굴이 역력히 드러났다. “목말라. 형, 물은 챙겼어?” 순간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아뿔싸! 아무도 물을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이 네 남자는 자신들의 젊음만 믿고 나온 것이다. 무모하기도 하지! 하는 수 없이 근처 매점에서 생수를 사 먹고 단번에 다 비운 이들은 빈 물통을 가방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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