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右가 1941년 10월 참배하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로 들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이 같은 내용은 도쿄(東京) 국립공문소에서 발견된 도조의 일기 형식 수기(1945년 8월 10~14일)에서 확인됐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11일 보도했다. 도조는 수기에서 “신폭탄(원자폭탄)에 움츠러들고 소련의 참전에 움찔해 무조건 항복하면 국민의 전투 의사는 급속히 사그라진다. 이런 사태는 군의 통수 지휘에 지대한 혼란을 일으켜 전투력을 저하시킨다”며 내각 결정에 반발했다. 일 정부는 8월 6일 히로시마(廣島)에 이어 9일 나가사키(長崎)에도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즉시 포츠담 선언을 수용해 항복했다.
도조는 또 “동아시아와 일본의 보호를 위해 많은 군인과 국민이 희생했는데 끝을 보지 못하고 섣불리 화평을 맺는 것은 적에게 종속되는 길”이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도조 연구가인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는 “패망 직전 도조의 심경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진귀한 자료”라며 “패전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 추궁에 신경을 곤두세운 속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고 평가했다. 도조는 A급 전범으로 수감돼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48년 12월 처형됐다.
도쿄=김동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