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대장 “겁쟁이 내각·국민 탓에 패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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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일제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右가 1941년 10월 참배하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로 들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일제의 A급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가 자신에게 돌아올 패전의 책임을 일 정부와 국민의 탓으로 전가한 사실이 밝혀졌다. 군부 출신인 도조는 1941년 총리 재임 시 진주만 기습을 단행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으며 패망 직전에는 육군 대장 자격으로 전쟁을 지휘했다. 도조는 패망 직전 “싸움은 최후의 한순간에 결정되는 법인데 일본 제국이 가지고 있는 힘을 십분 발휘해 보지도 않고 적들의 선전책동에 휘말려 무릎을 꿇게 됐다”며 내각의 항복 결정에 불만을 나타냈다. 당시 내각은 해군 출신의 정치인 스즈키 간타로(鈴木貫太郞) 총리가 이끌고 있었다. 그는 또 “적의 위협에 겁먹고 손을 들어 버리는 내각 지도자와 국민의 얼빠진 정신을 믿고 전쟁에 나선 것은 개전 당시 책임자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은 도쿄(東京) 국립공문소에서 발견된 도조의 일기 형식 수기(1945년 8월 10~14일)에서 확인됐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11일 보도했다. 도조는 수기에서 “신폭탄(원자폭탄)에 움츠러들고 소련의 참전에 움찔해 무조건 항복하면 국민의 전투 의사는 급속히 사그라진다. 이런 사태는 군의 통수 지휘에 지대한 혼란을 일으켜 전투력을 저하시킨다”며 내각 결정에 반발했다. 일 정부는 8월 6일 히로시마(廣島)에 이어 9일 나가사키(長崎)에도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즉시 포츠담 선언을 수용해 항복했다.

도조는 또 “동아시아와 일본의 보호를 위해 많은 군인과 국민이 희생했는데 끝을 보지 못하고 섣불리 화평을 맺는 것은 적에게 종속되는 길”이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도조 연구가인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는 “패망 직전 도조의 심경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진귀한 자료”라며 “패전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 추궁에 신경을 곤두세운 속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고 평가했다. 도조는 A급 전범으로 수감돼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48년 12월 처형됐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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