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암자로가는길>합천 원당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봄볕은 차별이 없다.따뜻한 빛을 양식(糧食)처럼 평등하게 뿌려주고 있다.원당암(願堂庵.사진)가는 초입의 산자락도 마찬가지다.어느새 산색이 봄볕을 받아 파스텔처럼 푸른 빛을 띠고 있는것이다. 원당암은 「해인사1번지」같은 상징적인 암자다.해인사와형제처럼 역사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법당 앞에 보물 제518호로 지정받아 보호받고 있는 석탑과 석등에도 암자의 나이테는새겨져 있다.
신라 애장왕(哀莊王)은 공주의 난치병이 낫자 부처의 가호(加護)로 여기고 해인사의 창건을 발원한 순응(順應)대사를 몸소 크게 도와주었다고 한다.왕은 서라벌을 떠나 가야산에 임시로 작은 집을 지어 절 공사를 독려하고 정사(政事)를 보기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원당암이라는 것이다.
암자가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혜암(慧菴)스님이 머무른 이후부터였다고 한다.혜암스님은 현재 해인사의 정신적 지주라 할수 있는 방장(方丈)스님인 것이다.
또한 이 암자에서는 스님들과 똑같이 일반인들도 여름과 겨울에한철씩 안거(安居)에 들어간다고 한다.안거란 편안히 다리 뻗고쉰다는 뜻이 아니라 화두를 받아 정진하는 기간이라는 불가의 단어다.그러니까 원당암은 재가불자(在家佛者)들의 선방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개설된 산중암자인 셈이다.
지금도 혜암스님은 하루 한끼만 먹는 오후불식(午後不食)정진과방바닥에 등을 대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수행을 몇십년 동안계속하고 있다.그래서 우스갯말로 스님들 사이에서 특수체질(?)이라고 불리면서 음식과 잠으로부터 해탈된 분이 라는 것이다.
그러니 스님을 모셨던 여연(如然)스님의 기억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큰스님이 태백산 동암(東庵)에 계실 때니까 74년도였지요.해인사에서 몇십리를 걸어 스님을 찾아가면 오후가 되었지요.그러면 벌써 밥이 없었어요.』 또 스님이 잠을 자지 않고정진하고 계시기 때문에 제자의 도리를 지키느라 아침까지 눈을 뜬 채 쫄쫄 굶고 있다 간장 몇 방울에 죽 한그릇 겨우 먹고 나서 스님과 헤어지곤 했다는 여연 스님의 이야기다.
혜암스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극기와 인욕을 스님으로부터 배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몇십년 동안 계속되는 스님의 처절한 수행은 꼭 그런 의미만은 아닌 것 같다.스님의 그런 치열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세상은 그래도 물신(物神)의 늪에 곤두박질치지 않고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0599)32-730 8.
정찬주〈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