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예측불허의 북한-4자회담은 막다른 북한에 탈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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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휴전선은 냉전 최후의 전선(戰線)이다.북한은 이해불가능한 나라다.프랑스 작가 폴 발레리가 말했듯 최악의 상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한반도는 아시아의 분쟁가능지역중 가장 위험한 곳이다.평화는 언제나처럼 요원해 보인다 역사적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는 두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첫째는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다.교전당사국들은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라면 쌍방이 화해하고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관계정상화를 원하는 세력에 힘을 몰아줌으로써 적대감을 없애는 방법도 있 다.
이들은 첨예하게 맞부닥친 적의를 서서히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모색한다.국가간 화해는 법적으로 해결되기보다 분쟁국가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변화함으로써 이뤄진다.
분단한국은 어떤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북한정권은 53년 체결한 정전협정의 효력마저 부인하고 있을 뿐더러 북한주민이 발전할 수 있는 어떠한 형태의 가능성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북한이 겪고 있는 극심한 경제난과 기아를 감안한다면 언제라도 소요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문제는 내부의 불안을 무마해야 하는 북한이 정치.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국에 대해 제2의 무력침공을 해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4자회담은 건설적 조치로 평가받을 수 있다.4자회담의 당사자는 남북한과 미국.중국이다.아무런 전제조건을 달지 않고 가능한 한 신속히 회담을 시작하자는 이 제의는 한국과의 대화를 꺼려했던 북한으로 하여금 막다른 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출구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4자회담안지지의사를 신속히 밝혔다.다른 아시아국가들은 중국과 미국이 여전히 일부 영역에서 협력한다는 사실에 안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북한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다.독일의 경우 냉전은 열전으로 변화하지 않았다.한국의 분단상황은 독일의 경우보다 훨씬 더심각했고 현재도 그러하다.동.서독은 서신과 전화통화를 나누고 서로 방문할수 있었다.또 상대국의 TV프로그램 시청도 허용됐다.서로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을경우 무역도 했다.그러나 이중 현재 남북한이 시행하는 것은 전혀 없다.
북한은 지난 40년동안 줄곧 외부세계와의 단절을 고집해왔다.
북한의 고립은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옛소련이 해체된후오히려 심화됐다.김정일(金正日)이 권좌를 차지한 후 평양으로부터는 현상태를 고착화하려는 시도와 변화를 꾀하려 는 조짐이 동시에 감지되고 있다.
설사 평화회담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회담의 결과가 통일은 차치하고라도 한반도 정상화로 귀결될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문스럽다.회담이 진지하게 진행될 경우 기대할수 있는 최상의 상황은 지금보다 우호적인 질서가 형성되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현존하는 상황」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됐다.현상타파를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두번째 단계는 반드시 상호 무력행사의 포기로 연결돼야한다.더이상 서로 피와 눈물을 흘리게 만들지 말자고 약속하는 것-이것이야말로 데탕트의 출발점이다.
국경지대의 비무장화가 세번째 단계며 네번째 단계가 상호 군비축소다.동시에 데탕트는 국가간 관계에 국한돼서는 안된다.정상화는 양국 국민에게도 이익을 주어야 한다.
정상화의 과정이 계속 진행되는데 필요한 사회발전은 양국이 서로 개방된 상황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정권이 그러한 길을 택할 준비가 돼있는가.
평화회담에 대한 북측의 반응이 그들의 의도를 판단할수 있는 첫단서가 될 것이다.북한정권이 과거처럼 이 제안을 완고하게 거절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이는 한반도의 변화가 북측에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유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북한정권을 뒤엎는 급격한 정치.경제적 격변의 결과로 발생할 가능성이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89년의 독일을 보건대 그러한 격변은 문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발생 했다.
한국은 이러한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현단계에서는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보다 격변의 개연성이 더 크다.독일통일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4반세기동안 분단됐던 국가가 통일의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그렇더라도 만약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것은 역사가 던져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통일은 인접국의 이해를 충족시킬 수 있는 국제질서의 틀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독일의 경우 동.서독과 미국.옛소련.프랑스.영국이 서명한 「2+4」협정을 기본구도로 삼았다.동시에 유럽공동체도 통일독일을 지원할 의사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2+4」의 구도를 한반도에 적용한다면 관계국가는 중국.
미국.러시아.일본 등이 될 것이다.경제적으로 부강하고 바라건대핵을 보유하지 않은 통일한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현재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환태평양공동체는 통일한국이 활동하기에 걸맞은 환경을 제공해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단지 한가지 뿐이다.머지않아 한반도에서 어떠한 움직임이 발생하리라는 것이다.북한이 스스로를개방하고 개혁의 기치를 올릴 수도 있고, 붕괴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어떤 상황이 전개되는가에 따라 국제평화 회담은 이에 적절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아마도 이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정리=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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