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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4월의 한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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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4월은 한국의 민주주의.자유주의 세력에겐 의미가 남다르다. 44년 전 4.19는 독재에 항거하는 전통을 만들어 냈고 이는 군부 독재정권의 종말 때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매해 4월이면 한국에선 최루탄으로 상징되는 독재 냉전세력과 자유주의.애국주의 세력의 대결이 봄마다 피어나는 꽃처럼 반복되어 왔다.

시위를 막는 측은 좌익 모험주의자들로부터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시위를 감행하는 측에선 독재.부패.반민족 세력에게서 자유와 민주를 해방시켜 민주주의를 이룩하자고 외쳤다. 우스꽝스럽지만 둘다 양 극단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의 수호를 내걸었던 것이다.

2004년 4월 총선이 끝난 후 이곳저곳에서 이번 총선의 의미를 파악하는 모임들이 열린다. 한 개혁주의자는 "1987년 이후 계속된 시민혁명의 완결판"이라고 주장하고, 한 보수 문인은 "2002년 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의 심리가 해결된 장이었다"고 평가했다. 어쨌거나 민노당 등 거리의 투사가 혁명이 아닌 선거를 통해 입법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상징한다.

올해 4월엔 총선 외에도 총선 며칠 전 동북아를 순방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일정이 관심을 끌었다. 체니가 누구인가. 이라크전쟁의 기획자이자 대북 강경 보수주의자 아닌가. 그래서인지 체니의 방한에 앞서 혹시나 하는 음모론이 기승을 부렸다. 그의 순방 직전 뉴욕 타임스는 핵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이 북한에서 기폭장치를 보았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평소 같으면 파장이 대단했을 이 사건은 상대적으로 작게 취급됐다. 일본에서조차 1회성 보도의 의미밖에 가지지 못했다. 미국이 이라크전쟁 1년이 넘도록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져서일까. 아니면 마침 이라크에서 발생한 일본인 납치사건 때문일까.

체니의 순방 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와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잦은 외국 정상과의 만남이 외교의 효용성과 개방에 대한 신뢰를 키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그래서 북한의 경제난과 핵이 한반도와 동북아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이제는 사라지길 기대한다. 남한의 4월에서 최루탄이 사라진 것처럼.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