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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엔진 없이, 요트·도보·사이클로 지구 한바퀴 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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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14면

마이크 혼이 지난달 21일 런던을 방문했을 때 캐서린 도크에 세워둔 판게아호에 앉아 있다. 원 안은 판게아호의 모습. 런던 AP=연합뉴스

마이크 혼. 올해 42세의 남아공 출신 모험가. 그는 ‘극한 도전’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깨는 삶을 살고 있다.

4년간 10만km 대장정 떠나는 모험가 마이크 혼

그는 10월 9일 칠레에 있는 세계 최남단의 도시 푼타아레나스를 출발해 남·북극과 5대양 6대주를 누비는 사상 초유의 모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4년간 10만㎞를 주파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여정이다. 그것도 디젤 엔진의 도움 없이 바다에선 요트, 육지에선 두 발과 카약·사이클·스키 등을 이용한다. 조금만 삐끗해도 목숨을 내놓아야 할 위험들이 지뢰밭처럼 깔려 있다.

그는 왜 이런 극한 도전을 하는 걸까. 혼은 말한다. “불가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발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The impossible exists only until we find a way to make it possible.)” 한마디로 불가능을 향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혼은 20여 년 전부터 끓임없이 더 새롭고 더 큰 모험에 자신을 던졌다. 최악의 자연환경 속에서 홀로 생존하는 경험을 통해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것이었다.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 모험가들은 불가능한 것을 보면 첫눈에 매료된다고 한다. 뗏목을 타고 태평양을 횡단한 토르 헤위에르달(1947년), 세계 최초의 무기항 단독 세계일주 경쟁에서 승리한 녹스 존스턴(69년) 등은 새로운 모험 신화를 쓴 사람들이다. 인간의 모험은 대양·사막·강·산·극지방·하늘·지하동굴을 가리지 않는다. 요즘엔 돈만 내면 미리 짜인 프로그램에 따라 모험을 즐길 수 있는 ‘패키지 모험시대’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마이크 혼은 ‘판게아(Pangaea)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번 모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환경과 청년’이라는 주제를 주창했다. 그는 “생명의 근원을 돌보는 것은 지구의 혜택을 누리는 모든 인간이 가장 중요시해야 할 일”이라며 “청소년이 지구의 자연을 귀중하게 여기는 걸 배우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판게아’란 단어도 환경을 의식한 것이다. 그리스어로 ‘모든 땅’이라는 뜻을 가진 판게아는 2억5000만 년 전 6개 대륙이 갈라지기 전에 존재했던 초(超)대륙의 명칭이다. 혼은 이번 모험을 통해 6개 대륙으로 나뉜 지구인의 마음을 하나로 묶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타고 갈 보트 ‘판게아’는 35m 길이의 범선(帆船)이다. 평균 12노트(시속 22㎞)의 속도를 내면서 극 지방의 혹한과 빙하, 5대양의 폭풍과 파도를 이겨내도록 설계돼 있다. 최대 30명까지 숙박 가능해 판게아 프로젝트 팀원과 각 대륙에서 초청받을 13∼20세의 청소년들이 동승할 수 있다. 판게아는 첨단 정보통신 장비와 태양광·수소에너지를 활용한다. 그러나 환경오염 물질의 배출을 최대한 막기 위해 선체 자체는 물론 선상 생활에 쓸 소모품 역시 재활용에 중점을 뒀다. 메르세데스-벤츠 등 10여 개 기업이 후원했다.

마이크 혼은 올 4월부터 판게아를 타고 브라질에 이어 모나코·바르셀로나·로리앙(프랑스 서부 해안도시)·함부르크·런던 등을 방문했다. 7월엔 런던을 출발해 판게아 여정의 한 부분이 될 그린란드를 항해했다. 그는 런던에서 ‘스포츠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로리어스 세계 스포츠 어워드 아카데미(LWSAA)’ 멤버들을 선상으로 초청했다. 보리스 베커(테니스 선수), 에드윈 모제스(육상 선수), 댈리 톰슨(올림픽 10종경기 연속 우승) 같은 스포츠계 거물들이 포함됐다.

마이크 혼은 그동안 판게아 프로젝트를 준비라도 한 것처럼 다양한 모험 행보를 계속해 왔다. 99년 6월부터 적도를 따라 세계 최초로 무동력(無動力)으로 지구를 일주했다. 17개월간 단독으로 길이 8m밖에 되지 않는 보트 ‘위도 0도’호와 도보·자전거·카누 등만 이용해 4만㎞를 주파했다. 당시 그는 360㎞의 아마존 정글 속에서 48㎏의 배낭을 멘 채 “불가능은 가능하게 하려고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터치아트, 『적도일주』 참조).

밀림에서 뱀에 물려 나흘간 사경을 헤매기도 하고, 게릴라, 마약밀매 조직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원숭이·악어를 잡아 끼니를 때운 적도 많았다. 인도양에서 시속 120㎞의 사이클론을 만나 배가 침몰될 뻔하기도 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신(神)과 바다에 목숨을 맡기고 눈을 감은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인간이었다. 내전에 시달리는 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몇 차례 억류·살해 위협을 당한 마이크 혼은 자신이 쓴 『적도지대』에서 “인간이 가장 무서운 포식자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상어의 눈처럼 텅 비어 있다. 살상 기계들이다”고 회고했다. 그는 514일 만에 지구 횡단을 마친 뒤 자신이 출발한 니오니에 해변(가봉)에서 주워 간 조가비 6개를 다시 모래 속에 묻었다. 조가비들은 자신이 정복한 대서양·남미·태평양·인도양·아프리카 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혼은 그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초청을 받아 바티칸을 방문했다.

판게아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워밍업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97년엔 6개월간 아마존 지역을 무동력으로 탐사했다. 대학 졸업 후 절벽 수직 하강, 하이드로 스피드, 카누, 래프팅 같은 수상 스포츠를 섭렵한 게 큰 밑천이 됐다.

마이크 혼은 자신의 모험 대상을 남·북극으로 확대했다. 2004년 10월엔 사상 최초로 북극 지방 2만㎞를 무동력으로 완주했다. 보트·카약·스키·도보만으로 180㎏의 장비와 식량을 운반하면서 27개월간 혹한과 싸웠다. 2006년에는 노르웨이 탐험가 보르게 우슬란트와 함께 겨울철 북극 탐험을 했다. 엔진 동력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 개 썰매조차 타지 않고 60일간 해가 떠오르지 않는 설원 1000㎞를 걸었다. 지난해엔 스위스 산악인 3명과 함께 히말라야 가셰르브룸 Ⅰ, Ⅱ봉(각각 8068m, 8035m)을 등정했다.

판게아 프로젝트는 인간이 겪는 모든 자연환경, 즉 대양·강·늪·산맥·툰드라·빙하·정글·사막을 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탐험가는 험난한 자연환경보다 훨씬 더 무서운 마음속의 도전과 싸워야 한다. “내가 이것을 왜 하고 있지”라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마이크 혼은 최근 “이번 모험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청소년들을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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