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스위트룸처럼 네티즌을 유혹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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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03면

지난 1일 종영한 SBS-TV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이하 ‘달나도’, 최강희·이선균·지현우 주연)는 10% 안팎의 높지 않는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독특한 분위기로 팬들의 애정을 듬뿍 받았다. 공연기획사 ‘이다’에 의해 내년 가을엔 뮤지컬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황석영·박범신 이어 인터넷 소설 연재하는 작가 정이현

드라마 ‘달나도’는 작가 정이현(36)의 동명 베스트셀러 장편소설이 원작이다. 그는 요즘 젊은 여성 소설가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꼽힌다. 『달콤한 나의 도시』(2006)는 35만 부, 이전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3)는 3만 부, 후속 단편집『오늘의 거짓말』(2007)이 현재까지 8만 부 나갔다. 장편이야 그렇다 쳐도 단편집이 이 정도 나갔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정이현은 또한 미디어가 사랑하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기사나 인터뷰뿐 아니라 시사평·영화평·독서일기 등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얼마 전에는 일본의 인기 남자 배우 오다기리 조의 인터뷰어로 나서 뭇 여성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수시로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서 직접 독자와 소통하고 여기저기서 열리는 작품 낭송회 자리도 전혀 사양하지 않는다.

이런 매체들을 통해 보이는 정이현의 모습은 ‘작가’라기보다 ‘커리어 우먼’이다. 그녀의 소설들 역시 혼란스럽고 기이한 예술가의 작업실을 들여다본 것보다는 쾌적하고 세련된 호텔의 스위트룸을 방문하는 듯한 독서 체험을 선사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철딱서니 없는 연하남과 중후한 현실남을 두고 갈등하는 31살 직장 여성의 모습은, 그 자신 싱글이며 30대인 작가의 프로필과 겹쳐 보인다.

그런 정이현이 4일부터 인터넷에 새 소설 ‘너는 모른다’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박범신의 ‘촐라체’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이 네이버에 연재돼 큰 호응을 얻은 뒤다. 두 작가가 연재 뒤 낸 단행본까지 반응이 좋아 앞으로 한국소설이 인터넷에서 활로를 찾으리라는 분석이 나오는 시점이다. 정이현의 연재 소설도 일주일 만에 방문자가 1만 명에 육박한다.

그런데 이번에 연재되는 그녀의 소설은 실은 ‘새’ 소설이 아니다. 같은 등장인물과 배경의 소설이 일부 발표된 적이 있다. 계간 ‘문학동네’ 2007년 겨울호에 연재 1회분으로 실렸던 작품 ‘하우스(H.O.U.S.E)’로 ‘올봄 호와 여름 호는 쉬고 가을 호에 재개된다’는 공지만 연달아 남겼다.

지난해에 정이현은 같은 지면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바 있다. “소설을 쓰지 않는 일상은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얼굴 좋아졌네’라고 말하면 나는 웃으며 대꾸하곤 했다. ‘제가 요즘 아무것도 안 쓰거든요.’ 그 문장 속의 ‘안’이라는 글자를 ‘못’으로 바꿔야 한다는 걸, 스스로에게조차 억지로 숨기려고 들었다.” 인터넷 소설 연재는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주도했다는 후문이다. 지면에 연달아 ‘빵꾸’를 내는 소설가를 보며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내린 긴급처방일까.

정이현이 인터넷교보문고에 연재하는 소설은 ‘하우스’와 마찬가지로 이혼과 재혼으로 맺어진 다섯 명의 가족 이야기지만 ‘너는 모른다’로 바뀐 제목을 비롯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시점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었고, 첫 문장은 “누구에게나 집이 있다. 주거부정자거나 노숙자가 아니라면 말이다”에서 “시체가 발견된 것은 오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전 열시경이었다”로 급변했다. 6개월간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10시30분에 업데이트된다.

“나는 계간지 연재보다는 일일 연재에 더 맞는 사람 같다. 매일 스스로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10매에 온전히 몰입·집중하고, 한 회분 쓰고 나서 짧고 강렬한 탈진의 기분을 느끼고, 다시 긴장하고…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독자들과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그간 얄미울 정도로 쾌활하게만 보였던 작가에게서 대중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던 우울한 면, 창작자로서의 괴로움이 배어나온다. 예술가로서의 자의식과 고민을 어느 정도 열어 보였던 작가의 산문집 『작별』의 한 대목도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런 미련도 없는 척, 그곳을 떠났다. 이제 생의 어떤 한 시절을 통과했으니, 가장 익숙한 것, 가장 사랑하는 대상과의 작별이 필요한 때임을 어렴풋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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