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政局>2.입 다문 DJ 기로에 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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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총재가 입을 다물었다.12일 선대위 회의를 마치자마자 일산 집으로 돌아갔다.
이날 오전 갖기로 했던 기자회견도 취소했다.김한길대변인은 『며칠 정도 선거 결과를 분석.판단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그만큼 金총재의 충격은 큰 것으로 보인다.당초 방송사에서 신한국당의석이 1백70석이 넘는 것으로 보도할 때는 당장 쓰러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 당직자는 전했다.
「다행히」 신한국당이 과반수를 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결과는 金총재에게 뼈아픈 것이었다.단순한 의석 비교가 아니다.金총재는 총선사상 처음으로 여당이 서울에서 과반수를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하도록 허용한 것이다.지난해 지방선거에서 22명의 구청장중 20명을 석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장 민주당에서 분당해 나온 것이 가장 큰 원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金총재는 가장 큰 약점인 「지역당」문제를 『우리는 수도권당』이란 말로 극복하려 해왔는데 이제 그 말도 하지 못하게 됐다.철저한 지역당 전락인 셈이다.
金총재가 분당이란 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정계에 복귀한 것은 대권 재도전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그런데 대권 가도에 엄청난 장애물이 나타난 것이다.
일단 선대위 성명을 통해 패배 요인을 『야당을 위축시키고 여당을 보호한 TV와 검찰및 경찰등 외부에 있었다』고 떠넘기기를시도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이 과거 유신이나 5,6공시절에도 야당 우세를 지켜온 수도권 패배를 설명할 수 없다.중진 간부들도 대부분고배를 마셨다.수도권 승부가 1천~2천표,심지어 수백표에 좌우된 것을 감안하면 신한국당이 얻은 표는 통합민주 당이라면 압승도 가능한 것이었다.조급하게 총선을 대선 전초전으로 몰고간 金총재의 전략이 거부감을 일으켰다는 지적이 있다.
절대지지층조차 흔들리는 조짐도 나타났다.전국구의석이 득표율에따라 배분되는데도 불구하고 호남지역에서조차 70%를 밑도는 저조한 투표율을 보였다.
金총재는 이번 총선 결과와 국민의 뜻을 지켜본 뒤 연말께 대권도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제 당내에서도 『대권 재도전은 무리』라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다음 공천권 행사는 어려울 전망이어서 이런 목소리는 점점 커질 가능성이 있다.
당직자들은 金총재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으로 내각제 개헌이나 새로운 인물을 대권주자로 밀어주는 것들을 들고 있다.
金총재는 지난해부터 『총선에서 내각제 개헌에 대한 국민의 뜻을 물어볼 수 있다』고 말해왔다.국민회의가 1백석을 얻느냐의 여부를 내각제 개헌 저지 민의의 척도로 제시하기도 했다.따라서신한국당과 자민련이 내각제를 주장한다면 수용할 여지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신한국당이 안정의석을 확보함으로써 개헌 가능성은더욱 줄어들었다.
새로운 인물을 대권후보로 미는 방안은 총선 전부터 당내 일부인사들 사이에 조심스럽게 거론된 것이다.구체적으로 조순(趙淳)시장이 거론되기도 한다.지방선거때 고정표를 가진 金총재가 다른후보를 지원할 경우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경험한 때문이다.이 경우 민주당이나 다른 민주세력의 결집도 가능하다.
그러나 선대위 성명이 암시하듯 패배를 인정하지는 않을 것같다.오히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 대해 반격을 시도함으로써 위기를 넘기려 할 가능성이 높다.金대통령의 실책이 나올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
야3당 공조는 힘들어 보인다.따라서 김종필(金鍾泌)자민련총재에 의지해 金대통령의 세대교체 공세를 넘어갈 것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김종필총재로서도 김대중총재의 몰락시 공멸의 길을 걸을수 있다는 판단아래 당분간 제휴할 필요성을 느낄 만하다.그런 의미에서 두金씨는 공동운명체다.
金총재의 측근들은 아직도 여권이 대권 후보 경쟁과정에서 분열할 가능성을 점치며 그 틈을 비집고 대권 경쟁에 나설 수 있다고 보고 있기도 하다.
金총재로서는 당분간 이런 가능성들을 열어놓고 여론과 정국의 추이를 지켜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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