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선거에 나타난 북한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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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의 동향이나 공안사건등 북한관련 뉴스는 우리 선거결과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는 변수로 작용해 왔다.대선.총선을 막론하고서다. 대표적으로는 87년 대선이다.민정당 노태우(盧泰愚)후보는 KAL858기 폭파사건으로 통일민주당 김영삼(金泳三),평민당 김대중(金大中)후보를 막판에 따돌렸다.
87년 11월30일 KAL858기가 인도차이나반도 상공에서 폭파된 이 사건의 범인 김현희(金賢姬)는 선거를 하루 앞둔 12월15일 한국에 압송됐다.
수사비화에 따르면 박수길(朴銖吉)당시 외무부차관보가 바레인 수사당국에 거의 떼를 쓰다시피해 압송타이밍을 맞췄다고 한다.
92년 대선때도 있었다.이선실(李善實)간첩사건이다.남로당이후최대조직이라 불리던 「남한조선노동당」결성에 현직 정치인이 연루됐다 하여 파란을 일으켰다.
북한간첩 이선실과 우리 재야인사들이 접촉했다는 사실은 세간에충격을 줬다.이 와 중에 김대중 당시 민주당대표는 개인비서 이근희(李根熙)씨가 구속돼 대선에서 고전을 겪는 원인이 됐다.
북한변수가 야권에 불리하게만 작용했던 것은 아니다.
95년 6.27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최대이슈로 떠올랐던 대북쌀지원은 전혀 반대였다.북한과 일본의 쌀지원협상을 감지한 우리측 정부가 『일본에 앞서 북한에 무조건 쌀을 지원하겠다』고 호언한 것이 국민정서에 배치됐다.『외국쌀을 수입해 서라도 주겠다』는 발언은 농민의 반발을 불렀다.
베이징(北京)에서 북한과 극비리 접촉을 거쳐 선거를 이틀 앞둔,그것도 6월25일 쌀 2천을 실은 시아펙스호가 출항했으나 인공기 게양사건,삼선비너스호 억류사건까지 겹쳤다.결과는 여당의참패. 북한변수는 연원이 깊다.50년 5월30일 2대선거에는 무소속이 1백26명으로 60%를 차지했으나 6.25를 겪고난 후인 3대총선에서는 여당인 자유당이 1백14석으로 56.2%를차지했다.
67년 5.3대선을 앞두고 4월21일 간첩2명 생포.1명 사살,28일 간첩3명 사살등 보름사이에 무려 5건의 간첩단사건이벌어졌다.이어 한달뒤인 6.8총선까지 3건의 무장간첩단 사건이추가로 발표됐다.
71년대선 1주일전에는 51명의 간첩단이 검거됐다.하지만 이같은 일련의 간첩검거의 「남발」은 「약효(藥效)」를 감소시키는「부작용」도 초래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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