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매향리 사격장 폐쇄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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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50여년 동안 폭격기와 전투기 등의 폭탄 투하와 기총사격 훈련이 계속되면서 인근 주민들의 반발을 사온 매향리 미군 사격장이 완전 폐쇄된다. 한.미 양국은 최근 매향리 사격장을 2005년까지 한국이 인수하고 미군 사격장의 대체장소를 마련해주기로 합의했다.

매향리 사격장을 둘러싼 주민들과 미군의 갈등은 6.25 당시 미군의 양민살해사건인 노근리 사건, 미군 장갑차에 의한 효순.미선양 사망사건 등과 함께 최근 격화된 반미(反美)시위의 원인이 됐다. 이 때문에 한.미 양국이 합의를 통해 한.미동맹의 장기적 발전을 가로막는 집단적 민원의 소지를 없애버린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크다. 무엇보다 안보능력의 강화를 위한 각종 훈련과 군사력 증강 조치들이, 안보의 가장 기본적 목표인 주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인식시켰다. 주민들의 권리의식이 과거와는 크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한국 정부가 적법하게 마련해준 사격장에서 미군이 적법한 절차에 따른 훈련을 했음에도 집단민원이 발생했고, 이를 한.미 양국이 초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반미시위의 빌미가 됐다는 사실도 깊이 숙고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 핵 위협과 주변 강대국의 세력갈등 속에서 국가의 안녕과 평화번영을 유지하기 위한 안보 우려가 존재하는 한 군인들의 훈련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은 우리 안보의 초석으로서 계속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향리는 아니더라도 또 다른 곳에서 한.미 양국은 훈련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대다수 국민의 인식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미 양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민들의 반발을 사지 않으면서도 동맹을 강화하고 안보 태세 유지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훈련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제3의 훈련장소를 물색하는 데 주민 피해를 최우선 고려해 충분한 사전 동의를 구하는 등 치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시대적 상황변화에 따른 세심한 배려만이 또 다른 매향리 사태를 막고 한.미동맹의 질적 개선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