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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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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구에 인간이 출현한 이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사람의 평균 수명은 20세를 넘지 못했다. 기원후 1900년간 수명의 증가속도는 1세기 1년꼴, 달팽이 걸음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설 무렵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45세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난 1세기 동안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33년이나 늘어났다. 신생아·산모의 사망률이 크게줄고 심장병·뇌졸중 예방 프로그램이 효력을 발휘한 덕분이다. 특히 돌 전에 숨진 아기의 비율이 20세기 초 10∼15%에서 1% 이하로 급감한 것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일본은 더 극적이다. 1940년대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50세였다. 제2차 세계대전 뒤 20년마다 평균 수명이 10세씩 늘어나 이젠 ‘인생 80년’이 당연시되는 세계 최고의 장수국이 됐다.

 이런 수명 연장 추세가 이번 세기에 가속이 붙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은 두 자릿수 경제성장이 가능하나 선진국은 2∼4% 도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군가 마법을 써서 50세 이전의 사망률을 0으로 만든다 해도 평균 수명은 3.5년밖에 늘지 않는다. 미국 시카고대학 노화센터 스튜어트 올샨스키·부르스칸스 교수는 .불멸의 탐구(The Quest for immortality).에서 “(20세기 들어 시작된) 1차 수명 혁명이 완성되면 인간의 평균 수명이 85세(남성 82세, 여성 88세)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이 목표를 이루려면 일부 국가(집단)의 유아 사망률 대폭 감소, 금연·절주, 철저한 예방 접종, 식습관 개선을 통한 체중 조절, 규칙적인 운동, 안전벨트 착용, 안전한 성생활,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치료와 건강보험 보장 등 8가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최근 정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은 79.1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78.9세)을 앞질렀으며 일본(82.4세)과의 격차도 3.5세로 줄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선진국의 조건은 될지언정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 수명’이다. 영생을 얻고도 건강을 잃어 자신의 생명을 거둬달라고 애원하는 그리스 신화의 ‘티도너스’를 보라. 요즘 노인들 사이에서 ‘구구팔팔이삼사’(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고 죽는다)란 말이 유행이다. ‘평균 수명 80세 시대’ ‘퇴직후 30년 시대’에 무엇이 가장 큰 덕목이겠나? 여름 한철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하자.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