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타계한 연극인 김동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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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한국 소극장 연극운동에 열정을 바쳤던 연극인 김동훈(57)씨.척박한 한국 연극풍토에 평생을 걸었던 그가 21일 연극발전에대한 나머지 꿈을 후진들에게 남긴 채 눈을 감았다.『연극인은 어떤 의식을 갖고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평소지론은 이제 유언으로 남았다.
30년전 주목받는 배우로 연극무대에 나타난 청년 김씨는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동료들이 연극무대를 떠난 뒤에도 변함없이 그자리에 남아 있었다.반백의 머리,깊게 주름진 얼굴이 세월을 대변했지만 그 세월도 연극에 대한 그의 열정만은 건드리지 못했다. 국내 연극계에 소극장운동을 처음 불붙인 실험극장은 「한국연극의 산 증인」이자 그의 고향이다.그는 60년 허규.김의경.김성옥.이기하씨 등과 함께 실험극장을 창단했으며 73년부터 대표를 맡아오면서 한국 연극의 발전을 자신의 영원한 목 표로 삼았다. 실험극장은 『에쿠우스』『신의 아그네스』『사의 찬미』등 국내 연극사의 화제작들을 가장 많이 무대에 올렸으며 서울운니동에서 18년간 관람객 3백만명을 동원한 것으로 기록됐다.
39년 서울종로구계동에서 태어난 김씨는 경기중.고를 졸업하고서울대 문리대 미학과를 졸업했다.고교시절 극단 신협의 『햄릿』과 『오델로』를 보고 연극에 매혹된 그는 대학 1학년때 우연히연극반 작품 『아들을 위하여』의 주연을 맡으며 연극무대에 데뷔했다. 『리어왕』(64).『맥베드』(69).『햄릿』(70년).
『심판』(74)등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남다른 연기력을 과시한 그는 75년 국내 최초의 모노드라마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에 출연,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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