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선거와 대외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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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은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르는데 있다.그런데 민주주의의 약점 또한 선거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경쟁자에 대한 모략과 비방,표의 매매(賣買),전근대적 지연.혈연.학연 등에 의한 지지 호소 등 당선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그리고 그 정도는 아직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정치적 후진국일수록 심하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 못지 않게 흔히 나타나는 또 하나의 현상은 대외정책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경향이다.대내정책 분야에 있어 투표만을 의식해 실천불가능한 공약을 마구 남발하는 것도 물론 문제지만 그 폐해가 대체로 국내에 그치는데 반해 대외 정책을 선거에 이용하는 것은 외부의 상대방들에게 우리의 속셈을 미리 노출시키는 격이 돼 국가이익에 심각한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대외정책의 많은 부분이 직접.간접으로 대북(對北)관계 내지 통일문제에 관련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외정책을 선거쟁점으로 활용하는 데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대외정책은 실천 가능한가,아닌가만이 중요한 것이 아 니라 실천가능하더라도 말을 할 수 있는 것과 말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기때문이다.
15대 총선과 관련해 주요 4당이 제시한 통일.외교.안보관계정책을 보면 크게 차이나는 점이 없는데 이점에 대해 일부에서는「무전략(無戰略)」이니,「정책기조 불분명」이니 하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그러나 과연 통일.안보문제에 정당 들이 꼭 차이점을 보일 필요가 있을까.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가에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난 2~3년간 남한 내부에서는 북핵.김일성 조문(弔問).쌀지원 등 북한과 관련된 문제로 심한 진통을 겪었다.정부의 대북정책을 에워싼 정당간 대립은 급기야 「보.혁론」과 「색깔론」등21세기를 목전에 둔 과학기술 혁신의 시대나 탈 냉전시대에는 맞지 않는 사상논쟁을 일으켰고,이것이 지역주의와 연계됨으로써 국민간에 골을 더욱 깊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통일.안보분야에 대한 4당의 정책들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할 정도로 차별성이 없게 된 데에는 그동안의 사상논쟁에 국민이 식상해 있다는 것과,특히 국민 다수의 이른바 「보수성향」을 각 당이 의식한 결과로 보이지만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 다.북한문제로 남한 내부가 시끄러워져서 이득을 보고 기뻐할 존재는 북한의집권세력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특히 최근 아태평화재단이 재정리해 제시한 국민회의김대중(金大中)총재의 3단계 통일방안이 대체로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그 궤(軌)를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도 대북정책에 있어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데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즉 金총재는 남북국가연합에서 연방제로 들어감에 있어 북한이 정치적으로는 복수정당제와 자유선거,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전제조건으로 주장함으로써 정부안에 비해 오히려 흡수통일론의 분위기가 강하게 풍길 정도다.
한편 선거기간중 대외정책에 관한 관심이 국내정치나 대내정책 때문에 철저히 가려져서도 곤란하다.물론 선거기간중에도 통일.외교.안보분야의 중요 사안들은 정부의 관계부서에 의해 계속 주목되고 검토될 것이지만 대외정책은 내용 이상으로 실 천에 옮기는추진력이 중요하고,그 추진력은 정부 단독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대외정책의 효율적 추진은 어떻게 정부와 여당이 야당과 일반 민간의 지원을 적절히 유도해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이 점에서 우리는 국 익에 관한한 여야가 따로 없고 언론마저 합세해 협력하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
유세희 한양대 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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