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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어려운 동생들 가르치며 희망과 행복 뭔지 저희가 배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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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 대원외고 학생들이 28일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영어 우리 나눔 캠프’를 열었다. 중학교 1~2학년 말하기 수업 시간에 김민석(대원외고 2년)군이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 앞에서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28일 오전 9시30분 서울 중곡4동 대원외고의 한 교실. 이 학교 2학년 김영석(17)군이 프로젝터를 사용해 영상을 틀었다. 교실에는 사복 차림의 중학교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영상은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연설하는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모습이었다.

“친어머니는 미혼모입니다. 갓난아기 때 고교도 못 마친 아버지와 고교만 졸업한 어머니의 가정에 입양됐죠. 대학을 중퇴했지만 글자 디자인을 공부해 그것을 컴퓨터 설계에 반영했습니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잘한 일이었습니다.”(‘디자인의 접목’은 애플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올려놨다.)

낯선 영상에 교실이 술렁였다. 김군이 동생뻘 되는 학생들에게 “이 순간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잘한 순간이 될 수도 있어요. 잘 해봐요, 우리”라고 말했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이 학교 학생 12명이 마련한 ‘영어나눔 캠프’ 첫 시간이었다. 김군이 맡은 것은 ‘쓰기’였지만, ‘잡스 동영상’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동기부여를 위해서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잡스지만 최고 명문대에서 환호를 받으며 연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어나눔 캠프에서 교육을 받는 중학생은 저소득층 자녀들이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층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편부모 자녀도 있다. 가정형편 때문에 영어학원을 다닐 수 없는 학생들을 학교의 추천을 받아 11명을 모았다.

3년째를 맞는 이 캠프는 광진구·성동구 등 대원외고 인근의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자 만들어졌다. 학생들은 학기 초인 4개월 전부터 ‘수업연구회’를 꾸려 교재를 직접 만들었다. 한 달 전부터 선정 학생들과 ‘멘토-멘티’를 맺어 지속적으로 연락했다. 담당 교사가 있지만 학생들의 자비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중3반, 중1·2반으로 나눠 11일간 매일 4교시씩 수업한다.

첫 수업을 진행한 김군은 이미 봉사활동 시간을 다 채웠다. 국내 대학 진학이 목표라 별도의 활동은 필요 없다. 그는 “미국에서 살다 와서 영어를 잘한다. 친구가 하자고 했다. 뭔가 나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2명 모두 국내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다. 외국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은 따로 봉사팀을 꾸려 활동한다. 전교 부회장인 백인유(17)군은 “‘특목고 애들은 사회에 관심 없고 이기적인 상류층’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캠프 교사인 이금선(17)양과 서리원(17)양은 복지단체가 운영하는 ‘저소득층 초·중교생을 위한 방과 후 학교’의 멤버다. 이미 굵직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양은 “어떤 아이에게 150점이 넘으면 피자헛 사주겠다”고 했는데, 그 피자를 거의 못 먹는 것 같더라.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했고, 아이들로부터 ‘희망’을 배웠다”고 말했다.

성동구의 중학교에 다니는 김민주(15·가명)양은 이날 오전 7시30분 학교에 도착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교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교사인 신재윤(17)양이 8시쯤 김양을 발견했다. 캠프에 참가한 중학생들은 김양처럼 영어수업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다. 이날 캠프에선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하기 같은 다양한 수업이 진행됐다. 수업을 마친 김양은 웃고 있었다. “내일이 기대돼요.”

글=정선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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