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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기자의 生生 교육현장

중앙일보

입력

바야흐로 캠프의 계절이다. 방학 때 만큼은 체험과 놀이를 즐기는 캠프도 좋다. 하지만 이번 여름을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그만큼 보람되게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주최의 예술영재발굴캠프와 민사고에서 주최한 토론캠프에서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으며 구슬땀을 흘리는 아이들을 만났다.

 | 민사고 토론 캠프 


초6~중2 4명씩 조 편성
의회·민사·NDT 토론 배워

  “우리 중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나올 수도 있고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위인이 될 수 없다는 상대팀의 말은 맞지 않습니다.”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열린 민사고 토론캠프 현장. 초등 6학년 학생들의 눈빛이 날카롭다.
  이 캠프에서 초6~중2 학생 96명은 학년별로 4명씩 조를 이뤄 의회식·민사식·NDT(National Debate Tournament)식 토론을 배운다. 교사추천서와 자기소개서를 토대로 선발된 학생들이다. 민사고 재학생·졸업생인 PA(Program Assistant)들이 한 조씩 맡아 자세히 설명해 준다. PA를 맡은 김주원(18·성균관대 글로벌경영1)양은 이 캠프의 제1회 참가자. 이후 민사고 토론 대회에도 참가해 동상을 받고 민사고에 합격, 올해 4년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김양은 “당시 토론 캠프에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학교가 그립기도 해서 PA 참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조별 토론 연습 후 다시 한 자리에 모인 아이들. 실전 토론에서 함께 할 조를 발표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한 팀이 되어 토론할 친구가 누굴까’ 눈으로 부지런히 찾는 눈치다. 토론의 주제도 발표됐다. 1라운드 주제는 ‘사랑은 인생의 훼방꾼이다’고, 2라운드는 ‘욕망은 발전의 원동력이다’다.
  아이들이 바빠졌다. 저녁 11시까지 주어진 자습시간 동안 토론에 활용할 자료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찾은 이경은(14·부산 명진중2)양은 백과사전에서 ‘사랑’ 키워드 부분을 펼쳐놓고 있다. “책에 부정적인 내용이 많네. ‘반대’를 선택할 걸 그랬나 봐.” 이경원(14·부산 서라벌여중2)양은 “‘사랑’의 정의를 찾았다”며 기뻐했다. 어느덧 PA가 자습시간 종료를 알린다. “얘들아, 시간 다 됐다. 올라가자.” “아~” 아이들이 아쉬워한다. “이것만 얼른 복사할게요.” 강병욱(14·광주 운리중2)군이 간신히 복사에 성공한 자료는 이혼율에 관한 것. “우리 마지막 정리 부분에서 이 내용으로 역전하자”며 팀원과 의기투합한다.
  PA들이 취침 시간을 알리며 재촉하지만 아이들은 자리를 쉬이 떠나지 못했다. 건물이 전부 소등됐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해 몰래 랜턴을 켜고 공부하려던 경원양은 PA에게 지적 당하기도 했다. 다음날. 경원양이 하소연한다. “공부 이렇게 많이 해보긴 처음이에요. 캠프 와서 놀 줄 알았는데….” 실전 토론이 끝나도 아이들은 시험 공부를 해야 한다. 시험은 논술쓰기, 논리적 오류 찾기, 주장 파악하기 등 캠프에서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치러진다. 캠프에서는 시험 점수와 실전 토론 점수, 생활태도 점수 등을 합해 마지막 날 우수 학생들을 선정했다.
  실전 토론을 한 시간여 앞두고 아이들은 조별로 ‘작전’을 짠다. “여기서 네가 이렇게 반박하고 나면 내가 정리할게.” “만약 반대쪽에서 이렇게 반박하면 어떡해?” 드디어 실전 토론 시간이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던 내용이건만 사람들 앞에 서자 머릿속이 하얗다. “1분 남았습니다”하는 진행자 말에 당황해 끝까지 말을 마치지 못하고 들어오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새삼 논리정연한 토론의 어려움을 느낀다. “다음에 잘 하면 되지.” 서로 토닥여 주며 아이들은 다시 힘을 내 공부하러 돌아갔다.

 | 예술영재 발굴 캠프 


저녁 9시까지 발레 수업
잠재력 끌어내는 데 주력

  “하나, 둘, 셋… 좋아요. 어깨를 더 내리고. 왼발, 오른발… 손을 더 뻗어요. 자, 좀더 진지하게! 대충하면 안돼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에서 발레 수업이 한창이다. 상하이 댄스아카데미의 쟈니안 첸(Janian Chen) 교장과 그를 통역 해주는 선생님의 지도에 어린 발레리나들이 온 신경을 집중한다. 첸 교장은 한 명 한 명 자세를 잡아준다.
  이곳은 지난 10일부터 7박8일 일정으로 열린 ‘예술영재발굴캠프’ 현장. 피아노·바이올린·첼로·작곡·시각예술·발레의 영재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물 위에서 노래함’이라는 주제 아래 각 분야의 명망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수업을 받는다. 참가비는 전액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한다.
  발레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 극장 무대의 뒤쪽으로 들어가니 두 명의 청일점 남학생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김수환(12·반원초6)군과 김세용(11·홍천초5)군은 콩쿨 현장에서 자주 만나 이미 친해진 사이란다. 수환군은 “작년에 이 캠프에 지원했다가 탈락해 올해는 한 달 정도 준비했다”고 털어놨다. 캠프에 참가한 영재들은 지난 5~6월에 이미 오디션을 치르고 선발된 아이들이다.
  극장을 빠져나와 지하로 내려가니 첼로 소리가 흘러나온다. 음악을 따라 찾아간 곳에서는 5명의 아이들이 첼리스트 볼프강 레너(Wolfgang Lehner)로부터 지도받고 있다. “첼로와 춤을 춘다는 생각으로 연주하세요. 좀 더 경쾌하게. 인사로 치면 ‘헬로우~’가 아니라 ‘헬로’가 돼야 해요.” 남아연(13·예원중1)양이 1:1 지도를 받고 나머지 학생들은 아연양의 연주를 지켜본다. “어깨를 써서 연주하는 점이 좋네요. 나머지 학생들도 배울 점이에요. 모두들 기회가 된다면 자기 연주를 녹음해 들어보세요. ‘내가 이렇게 연주했던가?’ 하면서 깜짝 놀랄 겁니다.” 잠시 쉬는 시간.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은 아연양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며 싱글벙글이다.
  강의실 곳곳에서는 바이올린·피아노·작곡 수업도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이혜림(13·예원중1·피아노 전공)양은 “피아노만 치는 게 아니라 그림도 그리고 합창도 해서 좋다”며 “사실 친구들이랑 간식을 먹으며 놀 수 있는 게 제일 신난다”고 살짝 일러준다.
  강의실 밖에서는 시각예술 영재 아이들이 캠코더를 들고 저마다 무언가를 찍고 있다. 베토벤의 음악을 목소리나 악기가 아닌 것으로 표현해오는 과제를 수행하는 중이다. 트럭을 좇아가기도 하고 식당의 그릇 소리, 환풍기 소리, 창문 두드리는 소리 등을 열심히 담아낸다. 시각 예술 강의를 맡은 강익중 작가는 “아이들이 자기가 남과 다르다는 것, 달라도 괜찮다는 걸 깨닫게 하고 싶다”며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솔직하고 유연한 생각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아이들을 보며 오히려 많이 배운다”고 덧붙였다. 강익중 작가는 아이들이 3인치 크기 종이에 그린 그림들을 모아 16일 밤 분수대에 조형물을 만들어 전시했다.
  수업은 저녁 9시까지 이어졌다. 밤이 깊어가는 그곳에서 어린 예술가들은 배움의 열정을 키우며,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과의 우정도 함께 쌓아가고 있었다.

프리미엄 최은혜기자
사진= 프리미엄 최명헌ㆍ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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