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생태학이 문학적 상상력을 만났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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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길이었을 때 언덕길은/깊고 깊었다/포장을 하고 난 뒤 그 길에서는/깊음이 사라졌다//숲의 정령들도 사라졌다// 깊은 흙/얄팍한 아스팔트//짐승스런 편리/사람다운 불편//깊은 자연/얕은 운명.”(정현종의 시 ‘깊은 흙’)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도원 교수가 쓴 생태 에세이집 두 권 곳곳에서는 시와 소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자연과학자의 저술에 나타난 문학작품이라, 그리고 김용택·박완서·양귀자·도종환 등의 이름이라…. 매우 드문 경우인데, 저자의 생태학적 사유와 문학은 어깨동무를 한 채 의외의 즐거움으로 연결된다. 정현종의 시는 도시의 낙엽은 왜 썩지 않는가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에서 등장한다.

▶ 이도원 교수의 생태 에세이 두 권은 자연을 인간의 파트너로 전제하고 있다.

“도시 낙엽이 썩지 않는 이유를 간단히 산성비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시급한 것은 대사활동에 필요한 물이 아닐지? 사람들이 뿜어낸 도시 열기로 물이 증발됐고, 아스팔트로 땅을 덮어 빗물이 스며들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토양 미생물들은 이제 일하기 싫어한다.”(『흐르는 강물 따라』167쪽)

생태 에세이라고 언급했지만, 분류가 그렇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그동안 품고 있던 모든 생각을 쏟아 버리고 싶었다”(191쪽)는 저자의 고백을 눈여겨 살펴보라. 문학작품을 끌어안는 탄력적인 구성 속에서 ‘삶의 학문’인 생태학의 새로운 논의를 대중적 어법으로 들려주려 했던 원력(願力)이 만만치 않게 가늠된다. 따라서 이 책은 미국 토목공학회 최우수 논문상(1990년)을 받았던 한 역량있는 생태학자의 30년 온축이 녹아 있다고 봐야 한다.

알고 보면 그 온축이란 게 균형잡힌 상식과 별로 어긋나지 않는다. “삶은 이어진 흐름이다” “생태학은 더불어 사는 길이다”는 지혜가 그렇다. 저자는 발품 팔아 관찰했던 우리네 강과 산에 관한 정보를 통해 지혜를 재확인해 주는 것이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 교훈의 재확인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자연의 파트너 인간이 원인 제공을 한 생태 문제를 해결해도 알고 보면 ‘오래된 미래’ 옛지혜에서 첫걸음을 떼자는 것이다.

습지 생태학·경관 생태학·전통 생태학에 대한 설명도 미더운 이 책에서 사람냄새가 풍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건 저자의 체취다. 알고 보면 그는 일상 속의 생태주의를 실천하는 예외적인 사람. 휴대전화도 없고, 자동차도 굴리지 않는다. 자원을 절약하자는 뜻을 출판사에 간곡하게 피력해 양장본을 일부러 피했다. 휴대하기 좋게 두 권으로 쪼갠 것도 그 때문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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