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야당 티 못 벗은 한나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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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특사 제안 소동이 대표적이다.

23일 낮 차명진 대변인이 “박희태 대표가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해 한나라당의 훌륭한 정치인을 대북 특사로 파견토록 대통령에게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희태 대표가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북 특사를 포함한 전방위 접촉을 통해 정확한 진상조사를 하고 그에 따른 북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한 말을 이어간 것이다. 그러나 여권 수뇌부의 대부분은 내막을 잘 몰랐다. 청와대와 정부에서도 근래 대북 특사와 관련해 본격적으로 움직인 흔적이 없어 보였다. 청와대에선 당장 “청와대에서 공식·비공식으로 거론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저녁 무렵 기자실에 들렀다가 관련 질문을 받고 “여러 구상 중 하나였다. 이 시점에서 저쪽도 받기 힘들다. (북쪽이) 안 받는 것에 대해 제안하는 게 좀…”이라고 말했다. 곧 이뤄질 일도, 상황도 아니란 얘기였다.


결국 24일 당·청이 나서서 해명해야 했다. 차 대변인은 “좀 더 신중히 하겠다”고 사과했다. 박희태 대표도 “(대북 특사설은) 언론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묻기에 ‘좋은 아이디어’라고 동감을 표시한 것 외에는 없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카드의 유효성엔 공감하지만 시기의 적절성에 대해선…”이라며 “소통 부족”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이와 관련, “여권에서 공개적으로 대북 특사를 거론할 정도면 사실상 남북 사이에 어느 정도 얘기가 된 다음이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여당이 야당 하듯 말부터 질렀다”(청와대 고위 인사), “스타일 구겼다”(허태열 최고위원)는 비판도 나왔다. 문제는 이런 일이 잦다는 것이다. 근래 가스·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두고 당이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반대했다가 5일 만에 “가스·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엄청나게 발생했다”고 동의해 준 일이 있다. 쇠고기 고시를 관보에 게재할지를 두고도 “국민이 충분히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 들 때 하겠다”고 했다가 불과 사흘 만에 입장을 바꿨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야당으로 지냈던 10년의 공백이 큰 것 같다”며 “아직도 야당 체질이어서 한탕주의가 남아 있다”고 꼬집었다. 비판 위주였던 야당 시절의 습성이 여전하다는 말이다. 여당으로서 경험 부족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 한나라당 의원 172명 중 여당 경험이 있는 의원은 불과 11명이다. 그나마 이상득 의원 정도를 빼곤 김영삼 정부의 종반인 1996년 15대 때 등원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청와대·정부와 대결만 했을 뿐 함께 일해 본 경험이 대부분 일천하다는 얘기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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