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조치훈, 12년 만에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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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세계바둑오픈 결승전 제3국
[제10보 (193~220)]
白.趙治勳 9단 黑.朴永訓 5단

결승전이 시작될 때 조치훈은 "승부는 운입니다"라고 말했다. 승부는 실력이라고 말해야 할 사람이 운이라고 말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오랜 세월 어이없이 지고 어이없이 이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실력은 온데간데 없고 온통 운만이 남는 것이다. 운도 실력이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진 바둑을 막판에 뒤집은 趙9단의 검붉은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의 면전엔 박영훈이란 젊은이가 있다. 훌륭한 승부를 펼쳤고 거의 다 승리했는데 마지막에 그 승리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제 '어린왕자' 박영훈은 허공에 붕 뜬 사람처럼 꿈꾸듯 바둑돌을 놓고 있다.

흑▲들이 거저 잡혀버렸으니 결과는 보나마나다. 한때 바둑의 전설이었던 조치훈이다. 또한 세계 무대에서 참패를 거듭해온 조치훈이기도 하다. 그 조치훈의 전설이 부활하고 있었다. 막판 기적적인 한수로 꺼져가는 불꽃을 되살리며 우승컵을 움켜쥐었다. 꼭 12년 만이다.

백이 중앙을 끊어왔을 때 <참고도> 흑2로 한발 물러섰으면 우승컵은 박영훈의 것이었다. 그 건 손바닥 두집기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이 대회가 시작된 이래 강자들의 숲을 돌파하며 숱한 난관을 이겨온 박영훈이건만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쉬운 일을 해내지 못했다. 생애 첫 우승컵이었는데 파랑새처럼 날아가 버렸다. 함정은 참으로 엉뚱한 데 있었다.

박영훈은 219로 힘들게 귀를 젖히더니 趙9단이 220으로 삶을 확인하자 돌을 거두었다. 趙9단이 미안한듯 고개를 숙였다. 박영훈의 눈에 얼핏 눈물이 비치는 듯 보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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