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혼탁 선거로는 교육감 바로 뽑지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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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30일 치러지는 첫 주민 직선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혼탁 양상이다. 중립을 지켜야 할 교장·교사들이 선거운동에 나서는 탈법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학부모단체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에 접수된 불법 선거운동 사례만 230여 건이 넘는다고 한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부모에게 특정 후보 명함과 돈봉투를 건넸다. 심지어 한 중학교 전교조 소속 교사는 방학 중인 학생들을 불러 전교조가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 홍보물을 내밀며 부모에게 투표를 종용하라고 했다고 한다. 준법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학부모·학생을 대상으로 버젓이 위법을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교육감 선거가 여야 정치권의 대리전 양상을 띠는 것도 꼴사납다. 정당은 특정 교육감 후보를 지지하거나 선거운동을 해선 안 된다는 게 중앙선관위의 입장이다. 그러나 한나라당·민주당은 직·간접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진보 성향 후보가 한나라당을 찾아가 선거 개입 중단을 요구하며 항의하는가 하면, 보수 성향 후보는 민주당이 교육의 중립 원칙을 훼손한다며 성명을 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감 후보들이 정치선거에 휘둘리고 있는 꼴이다.

교육감 직선제 도입은 교육자치제를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주민 손으로 직접 교육감을 뽑아 주민의 뜻을 지방교육에 더 많이 반영하자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에 의한 간접선거가 낳은 금품수수·파벌싸움 같은 폐단을 없애자는 의도도 담겼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혼탁·불법이 도를 넘을 경우 직선제 도입 취지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깨끗한 선거가 될 수 있도록 후보와 정당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후보들은 교사를 동원해 유권자를 은밀하게 접촉하는 식의 불법 선거운동을 당장 멈춰야 한다. 교육감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저조한 관심을 더 떨어뜨리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대신에 정당한 방법으로 교육정책 대결에 나서라. 유권자는 투표에 참여해 교육감 후보를 제대로 심판해야 한다.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불법 선거운동 여부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