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제유가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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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럴당 150달러를 바라보던 국제 원유 가격이 지난주 4일 연속 떨어졌다.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현물가격은 배럴당 130달러 이하로 급락했다. 한 주간에 16.2달러 떨어진 것은 사상 최대의 하락폭이다. 이제 관심은 이번 유가 하락이 추세적으로 이어질지, 일시적인 조정에 그칠지에 쏠리고 있다. 석유시장의 제반 정황을 분석해 보면 국제유가의 추세가 약세로 전환될 소지가 적지 않다고 해석된다. 무엇보다 원유가격 반전의 계기가 수급요인의 변화로 촉발됐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그동안 초고유가의 배경으로 석유 가격이 오르더라도 중국을 포함한 신흥개도국들의 석유 소비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초고유가에 따른 소비 위축이 곳곳에서 데이터로 확인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7월 석유시장보고서를 통해 올해 세계 석유수요 증가분을 2007년보다 하루 약 10만 배럴 줄어든 89만 배럴로 전망했다. 선진국의 석유 소비는 감소하고 개도국의 소비 증가세는 둔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반기만 따져봐도 미국의 하루 석유 소비량이 전년 동기 대비 66만 배럴이나 줄었고, 2분기 연속 석유 소비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 급등에다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로 인한 경기 부진이 복합적으로 미국의 석유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유가 상승의 핵심으로 지목돼 온 중국의 2분기 석유 소비 증가율도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둔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석유 수요의 감소는 석유상품시장 투자자들에게 유가의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를 접게 하고 있다.

오일쇼크의 또 하나의 배경인 달러 약세도 제동이 걸릴 조짐이다. 최근 미국 채권보증업체인 모노라인 사태가 불거졌지만 씨티그룹이 기대 이상의 2분기 실적을 내놓으면서 안도감이 퍼지고 있다. 미국 경제가 하반기에는 매우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가들도 적지 않다. 달러화 환율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는 이유다. 미국 경기가 회복될 경우 상품시장으로 과도하게 몰려 있는 투기성 자금의 분산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두 가지 요인-고유가로 인한 석유 소비 위축과 달러 약세 반전-으로 인해 원유 가격이 연말까지 배럴당 100달러 내외까지 떨어질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9월 중순까지는 마음을 놓기 어렵다.

이 기간 동안 허리케인이 석유산업에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이란 핵개발을 둘러싼 중동에서의 지정학적 요인이 악화될 수도 있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겹치면 유가가 또다시 배럴당 150달러 수준에 근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석유시장에서 소비 둔화로 인한 원유가의 상한 수준이 이미 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규모 악재가 돌출되지 않는 한 배럴당 15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고 유가가 중장기적으로 다시 두 자릿수로 떨어지기는 쉽지 않다. 우선 비OPEC 산유국들의 증산 능력이 매우 제한적이다. 여기에다 중동 산유국들의 시장지배력이 확대되고 있다. 신흥 개도국들을 중심으로 석유 소비도 늘어날 전망이다. OPEC는 이번 유가 급등을 통해 기대 이상의 수확을 얻었다. 실제 시장 상황에서 수용 가능한 유가 상한 수준을 확인한 것이다. 석유시장 공급의 주도권을 쥔 OPEC가 새로운 형태의 유가밴드제를 논의한다는 뉴스가 나올 만큼 자신감을 보이는 배경이다.

이제 한숨을 돌리게 된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 중기적으로 배럴당 80~90달러 수준을 저점으로, 시장 상황에 따라 최고 140~150달러의 수준에 대비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정부도 이런 수준에 대비해 중장기적인 에너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국민들이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의 효율을 높이는 정책도 지속돼야 한다. 잠시 유가가 떨어졌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이문배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