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정치후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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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후원회는 미국(美國)의 특유한 선거자금 모금제도다.「정치행동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s)」가 공식명칭이다.줄여서 「팩(PAC)」으로 부른다.뒤에서 돈만 대주는 후원자가 아니고 헌금을 통해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정치적 「행동」의 의미를 지닌다.
미국에서 상원의원에 출마하는데 2천만달러(1백60억원),재선을 노리는 하원의원은 최소한 1백만달러(8억원)를 모금해야 한다고 한다.선거운동원을 고용하고,수시로 여론조사를 행하고,TV.라디오 등을 통해 정책과 이미지를 광고하는데 엄 청난 돈이 든다.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선거운동에 돈을 얼마를 쓰든 이는 후보의 자유다.로스 페로나 포브스 등 억만장자의 캠페인들이 그렇다.이들은 유권자들이 표로 심판해준다.
문제는 출처불명의 남의 돈이다.기업들의 직접 헌금은 1907년 법으로 금지됐다.1943년 이 금지조치가 노동조합에까지 확대되자 당시의 산별노총(CIO)이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PAC이었다.조합 돈은 내지 않고,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주머니돈으로특정후보나 정당에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자금을 모아주는 후원회였다. 연방선거운동법은 이 PAC의 존재를 공인(公認)도,부인도 하지 않는다.노조들에 이어 기업단체와 이익집단들이 다투어만들어나갔다.PAC의 숫자는 지금 5천개에 육박한다.선거에 돈이 많이 드는 현실을 감안해 법에 저촉되지 않고 법의 굴레에서빠져나갈 수 있게 만든 하나의 제도적 「우회로(loophole)」다. 국회의원 선거비용에 상한은 없고 선거법을 집행하는 선관위가 기부자쪽에 제한을 가한다.개인은 특정후보 후원회에 1천달러이상,특정정당 후원회엔 연간 2만달러이상 내지 못한다.2백달러이상 기부자는 이름과 직업 등이 공개된다.모든 후원회 는 분기별로 후원금의 조성및 지출내용을 선관위에 보고하고 후보들 역시 모금내용과 선거비용 지출내용을 사후 보고한다.
로비정치의 온상(溫床)으로 지탄도 받지만 대안(代案)이 없어정치과정에 불가결한 일부로 자리잡았다.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그리고 그 사용내용이 숨김없이 떳떳하게 공개되는데 그 존재의의와 생명이 있다.제도를 흉내내는 일은 어렵지 않 다.뿌리를 내릴 수 있는 정치문화와 정치기술적 운영의 묘가 우리로서는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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