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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의 정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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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미국의 중남부 테네시주 그린빌. 인구 1만5000명의 한적한 시골이다. 수도 워싱턴에서 남쪽으로 10시간쯤 차를 몰면 나온다. 그곳에 17대 대통령인 앤드루 존슨의 기념관이 있다. 국립 사적지다. 케네디 피살 뒤의 린든 B 존슨 대통령과 성이 같다. 그도 링컨의 암살(1865년)로 부통령에서 대통령에 올랐다. 미국 전역의 대통령 기념관을 찾아다니다 올해 초 들른 적이 있다.

존슨은 탄핵재판을 받은 첫 대통령이다. 기념관에는 독특한 전시물이 있다. 광대한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단돈 720만달러에 사들인 부동산 계약서, 그가 조그만 양복점 주인 시절 썼던 다리미.가위가 있다. '상원 탄핵재판'이란 코너가 눈길을 끈다. 탄핵이란 무엇인지 친절한 설명문부터 당시 사진.만평이 걸려 있다. 탄핵은 2단계 절차로 따진다. 하원이 우리 국회처럼 탄핵소추를 결의한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은 상원의 몫이다.

그의 탄핵 사유는 '공직 임기 보장법'의 위반이다. 그 법은 존슨과 대립하던 의회 급진파가 만들었다. 대통령 마음대로 장관을 바꾸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존슨은 전쟁장관을 해임했다. 탄핵소추로 이어졌다. 미국 헌법의 탄핵사유는 국가 전복.뇌물 수수, 그외 중범죄와 경범죄다. 존슨의 경우는 '중범죄와 경범죄'다. 국기(國基)를 흔드는 문제는 아니었다.

전시의 마지막 과정은 모의 재판이다. '당신이 상원의원이라면 존슨은 무죄.유죄 어느 쪽이냐'는 것이다. 탄핵 투표용지를 유리 투표함에 넣도록 했다. 당시 존슨은 3분의 2 의결정족수에서 한표차로 최종 탄핵 위기에서 벗어났다.

투표함의 양편에 쌓여 있는 종이의 양은 비슷했다. 의외였다. 그곳 사람들은 존슨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볼품없는 시골인 그곳에 가는 사람이면 존슨에 대한 애정이 있을 것이다. 그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한 서민 출신이다. 정치적 성장 과정은 감동적이다. 그렇다면 무죄 쪽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할텐데 그렇지 않았다.

그런 의문에 대해 기념관 관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재임 시절 정치적 갈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탓이다. 그것을 탄핵의 원인으로도 꼽고 있다. 다수 미국인은 통합의 리더십을 중시한다. 그것이 존슨의 장점을 덮고 있다. "

남북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게 그의 과제였다. 그는 링컨의 대화합 정책을 승계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할 역사의 통찰력이 미흡했다. 그는 친(親) 남부적 유화책을 밀고 나갔다. 그것이 최선의 정책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의회 다수인 북부 급진파의 정책을 수용했다면 남북 간 반목이 깊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그가 독선의 정치에 머물렀다는 평판은 일반적이다. 타협은 그의 체질과 맞지 않았다. 남의 비판에 못견뎌하고 곧잘 흥분했다. 학계에서 매기는 미국 전체 대통령의 성적표에서 그는 바닥권이고 중간을 넘지 못한다.

탄핵재판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총선 후의 정치가 통합과 상생으로 바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 바탕이 만들어지기 위한 요건은 무엇인가. 3.1절 연설에서 盧대통령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상당히 발전시켰고 세계 12번째의 경제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런 성취의 한복판에는 전임 대통령들의 리더십이 있다. 이승만의 건국, 박정희의 산업화, 김영삼.김대중의 민주화가 그것이다. 과거 대통령의 평가에 인색해선 통합의 정치를 이룰 수 없다. 편가르기 정치는 역사 판단의 편협함에서 나온다. 집권세력의 역사관이 바뀌어야만 갈등의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박보균 정치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