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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크 마개 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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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나사형 병마개를 사용한 와인 병.

‘…폭풍우는 내가 바다에 눈뜬 것을 축복해 주었고 나는 코르크 마개보다 더 가벼이 춤추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 아르튀르 랭보(1854~91년)의 시 ‘취한 배’(1871년)의 한 구절이다. 그 밖에도 프랑스의 시에는 포도주의 코르크 마개가 수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프랑스의 와인에서도 코르크 마개를 보지 못하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일간 르피가로는 알루미늄 나사형 마개가 코르크만 고집하던 프랑스 고급 와인 병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올해 전 세계에서 생산될 예정인 750mL 와인 170억 병 가운데 약 15%인 25억 병에 나사형 마개가 달려 나올 전망이다. 2003년 3억 병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5년 새 8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영국과 미국 등 ‘앵글로 마켓’에서 나사형 마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뉴질랜드산의 경우 90% 이상, 호주산은 60% 이상이 나사형이다. 나사형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선 가격 때문이다. 코르크 마개의 경우 비싼 제품은 개당 1유로(약 1600원)까지 한다. 반면 나사형 마개는 개당 0.05∼0.15유로 수준이다. 게다가 나사형 마개는 와인의 맛과 향을 보존하는 데도 더 낫다. 코르크 마개는 오래 보관할 경우 마개가 부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지하 보관 창고의 냄새가 배기도 한다. 그러나 나사형은 이런 우려가 거의 없고, 어느 와인이나 일정하게 품질을 지켜줄 수 있다.

와인 전문 사이트인 ‘주르날 뒤 뱅’은 같은 종류 와인을 코르크와 나사형 마개로 나눠 실험한 결과를 전했다. 코르크는 변질되는 예가 나타났지만 나사형 마개를 사용한 와인은 모두 일정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래서 고급 와인일수록 나사형 마개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와인의 정취를 중요시하는 프랑스는 세계에서 나사형 마개 사용이 가장 저조한 편이다. 와인 병은 무조건 코르크 마개로 닫아야 한다는 와인 제조업자와 소비자의 공통된 고집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경향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부르고뉴 지방의 고급 와인 생산지인 샹베르탱의 한 포도원은 수출 물량의 절반을 나사형 마개로 바꿨다. 최고급 백포도주 생산지 가운데 하나인 샤블리에서도 고급 제품을 중심으로 나사형 마개가 도입되고 있다.

고급 와인 마케팅 담당 회사인 라로슈의 대표는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고급 자동차 생산자가 10대 중 한 대꼴로 불량품이 나온다면 그 생산 방법을 따르겠느냐”며 “고급 와인은 나사형 마개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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