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법학 교육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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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런데 요즘 신학과 철학의 위상이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가장 인기가 높은 학과의 하나였던 법학도 중대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로스쿨’이라 일컬어지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이 법학교육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졸속과 무책임의 흔적들이 역력할 뿐만 아니라 법학 교육의 개선을 위한 개혁이 자칫 개악으로 낙인찍히게 될 우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학부의 법학 교육을 폐지하고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제 법학전문대학원을 전면 백지화하기는 어렵다 할지라도 법 개정 등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함으로써 법학전문대학원 교육을 내실화하는 변화와 발전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학전문대학원만으로 법학 교육의 모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처럼 모든 학교가 원하는 대로 로스쿨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인가에 의해 제한된 수의 법률가만이 양성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법조인이 아닌 법무사·변리사·공인중개사·감정평가사 등 유사 법조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양성은 대학이 아닌 학원에 몽땅 떠넘길 것인가?

현대사회에서 법의 활용도는 매우 광범위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법률가를 대량으로 양성해 그들이 대부분의 문제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법조직과 유사(類似) 법조직을 이원화하는 가운데 법조인들은 소송 실무를 중심으로 한 제한된 영역만을 담당했다. 법학전문대학원 체제 하에서도 이러한 사정은 당분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그동안 법조인을 많이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유사 법조직을 비롯해 각종 공무원의 양성에 큰 기여를 했던 중하위권 법과대학들은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부 대학은 법학전문대학원 인가를 받기 위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정원 확대를 기다리면서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일부 대학은 아예 학과의 폐지를 결정하고 실행으로 옮기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경쟁의 논리만을 강조해 중하위권 법과대학의 도태를 당연히 여기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것은 마치 대기업만이 살아남아야 하고, 중소기업은 모두 도태돼도 상관없다는 것과 유사한 논리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기 담당하는 역할이 다른 것처럼 법조인을 양성하는 대학과 유사 법조직 종사자를 양성하는 대학은 각기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은 이제 그만 하자. 이등과 삼등이 없는 일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어느 한 면에서 일등이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일등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각자가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가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일 것이며, 대학사회에 있어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도태의 위기에 직면한 중하위권 법과대학의 문제는 결국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법과대학의 문제며, 나아가 법학 교육 전체의 문제다. 이 문제를 간과할 경우 우리나라의 법학 교육이 절름발이가 될 것이며, 법률 서비스에 큰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에 대한 법률 서비스가 열악해지고, 국제 경쟁력이 약화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도미노의 첫 번째 조각이 넘어지려고 하는 바로 지금의 시점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는 점을 정책 담당자들을 비롯해 모든 국민이 분명히 깨닫기를 바란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