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 꼴불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1호 15면

초복(19일)을 기점으로 드디어 복날이 시작됐다. 네이버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복날의 의미는 이렇게 정의돼 있었다. ‘하지 다음 제3경일인 초복, 제4경일인 중복, 입추 후 제1경일인 말복이 되는 날을 말한다. 이 기간은 일년 중 가장 더운 날이라 하여 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술과 음식을 마련해 계곡이나 산에 놀러 가는 풍습이 있다’.

더우나 안 더우나 술과 음식을 즐기는 한국 남자들이 복날이라는 핑계거리를 만났으니 어찌 조용할 수 있으랴. 슬슬 ‘멍멍탕’ 이야기도 나오고(안 그래도 오늘 선배 한 분이 점심시간에 ‘갈래?’라고 유혹했다), 어느 산과 들에서는 제 처지가 슬퍼 우는 개 소리도 들릴 터. 하지만 오늘은 복날이면 으레 나오는 ‘멍멍이를 먹는 잔인한 인간=남자’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멍멍이를 먹어 본 적도 없고 먹기도 싫지만, 다른 사람의 경우라면 아직까지는 기호의 문제로 넘기는 편이다.

오늘 내가 진짜 하려는 이야기는 멍멍이를 먹든 삼계탕을 먹든, 식사 후 중년 남자들이 보이는 꼴불견에 관해서다. 시각적으로 말하자면 벨트 버클이 배꼽 위로 올라오도록 바지를 추켜 입고 툭 튀어나온 배를 쑥 내밀면서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음식점을 나와 거리를 걷는 모습이다. 왜 꼭 이쑤시개를 물고 음식점 밖으로 나오느냐 말이다. 깔끔한 척하는 게 아니고 음식점 안에서도 테이블에서 이쑤시개를 사용하는 것은 신사다운 매너가 아니다. 어느 선배의 “너도 늙어 봐라. 치아가 부실해서 뭘 먹어도 꼭 낀다. 그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네가 알아?” 하는 심정, 나도 안다. 그래서 나는 아예 가방에 치실을 넣어 갖고 다닌다. 하지만 꼭 화장실에서 사용한다.

고기를 먹는 게 쉽지 않던 시절에 ‘나 고기 먹었소’를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이쑤시개를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이 어떤 때인가. 오히려 육식을 금하고 채식·선식을 하는 게 웰빙 트렌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즘 이쑤시개를 물고 음식점 밖을 활보하는 남자들이란 한마디로 ‘나, 천박해’를 광고하는 ‘상놈’으로 보일밖에.

거리에서 이쑤시개를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볼썽사납다는 것 외에도 또 있다. 이쑤시개가 제 역할을 해서 끼었던 ‘그것’이 빠져나오면 남자들은 꼭 그걸 ‘툇’ 하고 거리에 뱉어 버린다(물론 그걸 오물거리며 씹어 넘기는 것도 역겹다. 시원하게 안 빠졌다고 쩝쩝 소리를 내는 소리까지 들으면 내가 먹은 것이 올라오려고 한다). 사용된 이쑤시개의 운명은 어찌될까? 휴지통이 흔치 않은 때라 당연히 길거리에 쓰윽 버려질 것이다. 신사다운 매너는 물론이요, 환경과 거리 질서 면에서도 완전 빵점짜리 남자가 되기란 이렇듯 쉽다. 하긴 식사 후 매너가 어디 복날에만 필요할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