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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걷기 ② / 평강식물원 산책

중앙일보

입력

푸른 기운 충전법 - 습지와 이끼 사이를 걷기

도시가 가장 갈망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득히 솟아오른 마천루가 아니라 아찔하도록 짙게 깔린 녹음이다. 도심 주변으로 식물원과 수목원이 발달한 것은 그런 갈망의 반영이다. 그래서(!) 워크홀릭은 오늘도 수목원을 찾아 떠난다. 이번에는 평강식물원이다.

경기도 포천 산정호수 인근에 위치한 평강식물원. 한의원을 운영하는 이환용 원장이 9년 전부터 명성산 우물목 자락에 손수 나무를 심고 꽃씨를 뿌려 조성한 식물원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자리한 식물원으로 산비탈 18만평 부지에는 연못정원과 잔디광장, 습지원, 화이트가든, 고사리원, 만병초원, 이끼원, 자생식물원, 고층습지, 고산습원, 들꽃동산, 암석원 등 12가지의 테마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명성산 자락에 둘러싸인 정원 곳곳을 따라 거닐다 보면 산과 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들꽃은 물론 백두산 등지의 고산지대에서나 자생하는 희귀 고산식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때문에 아이들의 생태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서울에서 평강 식물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동서울 또는 서울(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포천 방면 버스를 타고 운천까지 간다. 운천에서 다시 산정호수행 시내버스를 타고 정항동(우물목)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여기서부터 식물원까지는 걸어서 가야 한다. 산자락을 따라 굽이도는 도로 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우물목 펜션마을이 나온다. 그리고 그 안에 평강식물원이 자리하고 있다.

작은 꽃길이 안내하는 보행로를 따라 들어가면 매표소를 지나 왼쪽으로는 암석원이, 오른쪽으로는 연못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곳으로 향할까 고민하다 첫 걸음을 디딘 곳은 연못 정원. 수련의 향연이 펼쳐지는 연못정원은 녹음이 짙어가는 이맘때쯤부터 한여름인 7월까지 하루하루가 다른 자연의 수채화가 그려진다.
인상파 최고의 거장 모네가 일생에 걸쳐 소재로 삼았던 수련(water lily)은 물 위에 고혹적인 자태로 꽃이 피기에 많이들 ‘水蓮’으로 착각하지만, 사실 우리말로는 잠을 잔다는 뜻의 ‘睡蓮’이다. 꽃이 피는 개화기에 오후 3~4시부터 아침까지는 마치 잠을 자기라도 하듯 꽃을 접기 때문이다. 평강식물원에서 연못정원은 가장 인위적이고 조경미가 뛰어난 장소로도 꼽힌다.

연못정원과 함께 한여름이 오기 전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습지원. 습지원은 평강식물원에서 자랑하는 가든 중 한 곳으로 연못정원을 지나 잔디광장 옆으로 조성돼 있다. 습지원은 습지생태를 인공적으로 복원한 곳으로, 버들치, 붕어 등 다양한 민물고기와 양서류가 서식하면서 이를 먹이로 하는 조류, 야생동물도 함께 공존하는 하나의 작은 습지생태계다. 습지원 사이사이로 만들어진 나무 탐방로를 따라 식물과 주변 생물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관찰 할 수 있다.
특히 요즘 습지원에서는 보라색의 부채붓꽃과 노랑꽃창포가 군락을 이뤄 연못은 온통 보랏빛 물결이다. 북아메리카에서 온 리아트리스는 이국적인 정취를 더한다. 한여름이 되면 이곳은 분홍빛의 노루오줌 군락과 부처꽃, 리아트리스가 만개한다.

그런가하면 습지원 옆 비탈길을 따라 오른 습지원 전망대에 서면 습지원은 물론 광활히 펼쳐진 푸른 잔디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가끔 운 좋은 날이면 습지원으로 날아든 중대백로도 만날 수 있다. 전망대 의자에 앉아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보노라면 잠시나마 도시생활의 퍽퍽함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마음이 깃든다.

습지원전망대에서 바로 내려가지 말고 반대편 산길로 걸음을 옮겨보자. 구불구불 이어진 흙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소나무와 전나무 등으로 둘러싸인 숲에 들어서게 된다. 물소리를 따라 좀 더 들어가면 온통 푸른 이끼로 뒤덮인 작은 바위 계곡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평강식물원의 이끼원이다.
점점 무더워지는 여름, 숲의 시원함을 누리고 싶다면 이끼원이야말로 마침맞은 장소다.
깊은 산속 푸른 이끼로 가득한 계곡을 재현한 이끼원은 인공계류를 만들어 경쾌한 물소리가 들리며, 이끼가 잘 자라게 하기위해 설치한 스프링클러도 정해진 시간마다 작동되어 시원함을 더해준다. 우산이끼, 깃털이끼, 들솔이끼, 주름솔이끼 등 그냥 지나치기 쉬웠던 다양한 이끼들을 관찰할 수 있다.


이끼원을 나와 좀 더 깊이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무들 사이로 꽃인지 풀인지 모를 우리 야생화들의 군락지인 자생식물원을 지나게 된다. 길의 끝에 마련된 의자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옆길로 이어진 걸음은 사라져가는 고지대 습지를 생태적으로 복원한 고층습지에서 멈춘다.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식물원인 만큼 고층습지는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 특히 이곳에는 두만강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종인 산부채와 대암산 해오라비난초가 서식하고 있다. 고층습지에서부터 나무 탐방로로 이어진 고산습원은 부채붓꽃, 제비붓꽃, 태백산 조름나물, 순채(환경부 지정 희귀식물), 삼백초 등의 습지식물들과 곤충, 조류들이 한데 어우러져 학생들의 생태학습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고층습지에서 내려다보이는 들꽃동산은 마치 드넓은 풀밭 동산과도 같다.

들꽃동산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내려오면 크고 작은 암석들이 펼쳐진다.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 암석원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환경의 척박함을 극복하고 자신의 몸집에 비해 큰 꽃들을 피운 고산식물들이 암석을 뒤덮고 있다. 백두산에서 온 월귤, 흰두메양귀비, 한라산에서 온 시로미, 털진달래 등 우리나라 전국의 고산에서 자라던 희귀식물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암석원 한쪽에 조성된 20여 평의 알파인 하우스(alpine house)는 이러한 고산식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고산의 지형에 맞게 암석과 토양을 배치하여 마치 작은 산을 내려 보는 듯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암석원을 마지막으로 걸어 내려오면 처음의 자리인 매표소 입구에 다다른다. 테마에 맞춰 조성된 정원 곳곳에는 쉼터 공간과 학습 안내판이 마련돼 있다. 주말인 토요일 오후2시, 일요일 오전11시에는 ‘식물전문가와 함께하는 가이드’가 무료로 진행된다.

▲문의_평강식물원(www.peacelandkorea.com) / 031-531-7751
▲요금_어른 5000원 / 학생 4000원 (단체 30인 이상 1000원 할인)
▲개장 시간_오전 8:30-오후 7:30 (폐장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평강식물원 지도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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