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노스님의 방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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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규리(1960~) '노스님의 방석' 전문

노스님의 방석을 갈았다 솜이 딱딱하다
저 두꺼운 방석이 이토록 딱딱해질 때까지
야윈 엉덩이는 까맣게 죽었을 것이다
오래 전에 몸뚱어리는 놓았을 것이다
눌린 만큼 속으로 다문 사십년 방석의 침묵
꿈쩍도 않는다, 먼지도 안 난다
퇴설당 앞뜰에 앉아
몽둥이로 방석을 탁, 탁, 두드린다
제대로 독 오른 중생아!
이 독한 늙은 부처야!



내게도 방석이 있다. 4년쯤 깔고 앉았을 것이다. 방석을 보며 나는 그가 그저 방석이려니 하는 생각만 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는지, 그가 놓인 자리가 얼마나 고약하고 낮은 자리인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시를 읽으며 나는 내 방석에게 많이 미안했다. 그 또한 얼마나 독이 올라 있었을까. 몽둥이로 방석을 털어내며 화자는 그 미안감을 숨기지 못한다. 이 독한 늙은 부처야! 라는 시구는 화두에 가깝다. 미안하고 겸연쩍은 마음이 역설로 스며 있는 것이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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