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복 업계 ‘세일 금단증세’ 덜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중견 의류업체의 신사복 A브랜드는 고민에 빠졌다.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가량 줄어든 것이다. 실적 부진의 주요 원인은 올 초부터 백화점 주도로 실시한 가격 정찰제. 상시적으로 실시하던 30~50%의 세일을 없애고 전반적으로 제품 가격을 30%정도 낮췄다. 이 브랜드의 영업과장은 “사실상 판매가격은 똑같은데, ‘세일을 안 한다’고 하면 돌아서는 소비자가 많다”며 “아무래도 가을엔 세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백화점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대형 우유업체 B사는 최근 흰 우유 매출이 20% 감소했다. 4월 초부터 일명 ‘배불뚝이 우유’ 판매를 중단한 게 원인이다. 배불뚝이 우유는 1000mL짜리 우유에 180mL 우유팩을 한두 개씩 붙여주는 덤 상품. 원유(原乳) 가격 상승과 낙농가의 반발로 판촉 경쟁을 자제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덤 상품에 길들여진 소비자에게 ‘이게 정상 판매’라고 설득해도 잘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의 출혈 경쟁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요즘 신사복·우유업계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롯데·현대백화점의 올 2분기 신사복 매출은 지난해보다 1~5% 줄었다. 같은 기간 두 백화점 모두 전체 매출이 10%정도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큰 폭의 감소세다. 이 기간은 백화점들이 본격적으로 신사복 가격 정찰제를 시행한 시기.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브랜드에 따라 월 매출이 40% 정도 줄어든 곳이 있을 정도로 타격이 심하다”며 “일부 브랜드는 ‘단독으로라도 세일을 하고 싶다’고 부탁해 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우유업계도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다. 이마트의 주재형 바이어는 “흰 우유 매출이 4월 이후 10% 이상 떨어졌다”며 “소비자들이 ‘왜 덤 상품이 없어졌느냐’며 아직도 항의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상품에서는 추가 할인과 덤 끼우기 관행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신사복업계의 가격 정찰제는 ‘1년에 두 차례만 세일’을 내세웠지만 지난달 초부터 다음 달 말까지 브랜드 세일, 시즌 오프 등이 이어져 사실상 ‘상시 할인체제’로 다시 돌아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유업계에서도 일부 중소 브랜드가 다시 배불뚝이 제품을 대형마트에 공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정상적인 판매 관행이 자리 잡을 때까지 고충을 감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세일을 거의 하지 않는 판매 관행이 자리 잡기 위해선 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일부 브랜드가 ‘세일을 부활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고충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기회를 브랜드 가치를 올리기 위한 계기로 삼겠다는 업체도 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덤 상품이 없어도 소비자들이 찾는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한다는 게 회사 방침”이라며 “정상 판매 관행이 자리 잡으면 수익성이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