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채원석君이 본 전두환 前대통령 역사적 공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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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의 공판을 보며 우리 새싹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중앙일보와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의 「사랑의 일기장 쓰기」운동에 참여,지난해 교육장관상을 수상했던 채원석(蔡元錫.서울언북중 2년)군이 공판정에 들어가 역사적 순간을 보고 느낀 소감을 중앙일보에 기고했다.
[편집자 註] 26일 오전9시40분쯤 서울지방법원 417호 법정에 들어섰다.방청권을 받기 위해 어머니와 교대로 21시간 동안 줄을 선 끝에 드디어 전두환전대통령이 첫 재판을 받는 자리에 들어온 것이다.물론 난생 처음 들어와본 법정이었다.
어린 학생인 내가 공판을 방청하게 된 것은 『역사적 순간을 보고 느낀 소감을 친구들에게 전하면 어떻겠느냐』는 부모님과 「사랑의 일기쓰기 본부」선생님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가꼭 방청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물을 보는 눈은 우리 어린 학생들도 올바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전10시 판사님들이 검정 법의를 입고 들어섰다.
판사님들이 앉은 뒤로 법원을 상징하는 무궁화마크가 걸려있었다. 이윽고 全전대통령과 장관,청와대 수석보좌관을 지낸 사람들이들어왔다.순간 나는 당황했다.뉴스시간에 언제나 근엄하게 나왔던사람이 회색 수의 차림으로 고개를 숙인 채 들어오는 것을 가까이서 보니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혼란이 일어 났다.정말 저분이 이 나라 대통령이었는가? 검사들이 피고인들의 죄를 하나하나 지적했다.변호사들이 다시 반박했다.다음에 全피고인이 말문을열 차례가 됐다.
검사가 물었다.
『정주영회장에게 7회에 걸쳐 2백20억원을 받은 일이 있지요.』 『받은 일은 있으나 몇 회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이런 식으로 한동안 진행되다 全피고인이 『글쎄요.그 사람 속을 안들어가 봐서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하자 공판정은 잠깐 웃음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검사와 피고인.변호사가 주고받는 말 중에 「뇌물」과 「정치자금」이란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내 생각으론 같은 돈을 얘기하고 있는데 양쪽에서 쓰는 말이 달랐다.그럼 2천5백억원은 어떤 돈이란 말인가.우리나라 전직대통령 이 법정에 선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부정부패와 불의를 뿌리뽑아야 올바른 사회로 간다는 학교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도대체 정치자금이란 게 무엇이고 어디에 쓰이는 걸까.옆에 있는 어른께 물어보니 그 분은 어린 녀석이 어떻게 여기 들어왔는지만 물어보고 시원한 말씀을 해주지 않았다.
이 재판이 끝나면 친구들에게 법을 지키지 않아 법 앞에 불려온 전직 대통령의 초라한 모습을 이야기해주며 대통령보다 법이 더 힘세더라고 말해주고싶다.그래서 이 모습을 TV에 중계하면 좋겠다. 나는 이번 공판을 방청하면서 생각을 고쳐먹은 게 있다.꿈이 세종대왕처럼 문화를 일으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한 임금과같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 꿈을 버렸다.대신 절대 죄를짓고 살지 말자고 결심했다.
법을 지키고 작은 일도 조용히 꿋꿋하게 하는 꿈나무들이 자라이 나라의 백성이 돼야 우리나라가 튼튼한 나라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법정을 나오면서 나는 들어갈 때 답답하던 가슴이 한결 시원해진 느낌을 받았다.전직대통령이 법정에 선 것을 보고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채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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