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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평화에의 새로운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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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중동에서의 평화회담 급진전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말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회담 이후 처음 보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평화협상을 시작했고,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하마스와는 가자 지구에서의 정전에 합의했다. 또 레바논에도 협상을 제의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자 온건파인 마무드 압바스 간의 평화회담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중동은 지속적·포괄적 평화 체제로 가는 문 앞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해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서 열린 중동 평화회담은 핵심 이슈에서 참여국들 간의 입장 차이가 너무 커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아나폴리스 회담 이외의 협상은 전략적이기보다 전술적이다. 다른 모든 평화협상 중 어느 것도 전쟁에서 평화로 바로 건너뛸 수는 없다. 협상 당사자들도 그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하마스와의 정전을 정치적 협상으로 발전시키는 데는 대담한 정치적 수완이 필요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기 전까지는 아나폴리스 회담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입장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에 최소한의 권리도 주지 못할 것 같은 협상에 단지 참석하기 위해 저항군으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정전을 맺은 것은 2년 전 레바논에서처럼 또 다른 전쟁을 가자 지구에서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다. 지지도가 떨어진 데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는 새로 전쟁을 할 만한 동력을 갖추지 못했다. 가자 지구의 전쟁은 비용이 많이 들고, 쉽게 끝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골란 고원의 군부대와 거주민 철수를 요구하는 시리아 방식은 권위가 약해진 이스라엘 지도부와 미국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시리아는 미국과 친선관계를 맺는 것을 주목적으로 여기지만,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테러행위를 멈추라는 미국의 요구에 난색을 표한다. 시리아의 부타이나 샤반 장관은 “시리아가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저버리는 것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멀리하는 것과 똑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예고 없이 레바논 베이루트를 방문했다. 라이스의 방문은 중동의 평화 중재자 역할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였다. 레바논의 안정을 도와준 나라는 카타르였다. 이집트는 가자 지구의 정전을 중재했고, 터키는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회담에 다리를 놓았다. 이스라엘이 시리아에 관해 입장을 바꾼 점, 그리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중동 문제에 끼어든 점은 미국에 레바논 협상의 막차를 놓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악의 축’(이란과 시리아)으로 지목한 세력에 비해 크게 약해졌다. 레바논은 이란과 시리아의 압력을 견디기에는 미약하다. 레바논에는 시리아와 이란이 지원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시리아와 이란은 이들이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역할을 그만두길 바라지 않는다. 현재 레바논 국경지역의 이스라엘 점령지 셰바 농장 근처에는 이란과 시리아의 도움으로 조직된 헤즈볼라의 막강한 군대가 있다. 헤즈볼라는 군대를 해산시킬 빌미를 주는, 이 지역에서의 이스라엘 철군을 원하지 않는다.

가자 지구 정전 협상은 파타(압바스 수반 측)와 하마스의 화해를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둘의 화해는 아나폴리스 회담에 적법성을 부여할 것이며 더 많은 당사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레바논·시리아 그리고 어쩌면 이란을 포함한 국가들이 주장하는 평화협정 방식은 실패할 운명을 타고 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현실과 이상, 군사력과 외교력의 균형을 잡아 중동 협상에 참여한다면 중동 평화협상이 성공으로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슐로모 벤아미 전 이스라엘 외무장관
정리=김민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