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열린우리당은 法治를 부인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열린우리당과 김근태 원내대표의 법 의식에는 문제가 있다. 金대표는 방송토론에서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결정을 수용할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金대표는 "국회의 탄핵 결정이 합법적이니까 헌정 중단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히틀러가 나치즘으로 집권했을 때와 같은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격화되면서 열린우리당은 "金대표가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토론 당일 金대표의 말에서 그 진의는 충분히 드러났다고 본다. 그리고 승복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열린우리당 고위 당직자는 金대표뿐이 아니다.

승복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류를 명색이 여당이라는 열린우리당의 고위 당직자들이 주도하거나 방조하는 것은 간단한 사태가 아니다.

법치주의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다. 법을 우습게 알고 승복하지 않을 거면 도대체 선거는 왜 하고 국회 과반수 의석은 왜 달라고 하는지 열린우리당은 답해야 한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도 밝혀야 한다. 나만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독선과 헌법에 정해진 규정까지도 무시할 수 있다는 발상이 바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만일 탄핵논란을 재점화시키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다는 전략 차원에서 이런 말들이 나온다면 더욱 한심하다. 탄핵위기를 조성해 탄핵 반대의 표를 다시 결집시켜 보자는 계산인지 모르지만 이는 코앞의 승리를 위해 나라 기본을 허무는 행위다. 법치에 대해서조차 신뢰할 수 없는 정치세력에 유권자가 과연 무엇을 기대할 것이라고 믿는지 궁금하다.

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정만 수용한다는 기회주의를 버리고 헌재 결정에 무조건 승복한다고 입장을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 걸핏하면 탄핵 반대 여론조사 결과를 내세우는데 여론보다 소중한 것이 법치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