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보고되는 데 2시간…위기대응 시스템에 중대 문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0호 04면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의 불똥이 청와대에까지 옮겨 붙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늑장보고 의혹과 함께 위기관리 체계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이 대통령도 12일 청와대에서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청와대 보좌진과 관계부처를 강하게 질책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현대 측에 의해 통일부에 보고되고 청와대 관련 비서관을 통해 나한테 보고되는 데 무려 두 시간 이상 걸린 것은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이 확인된 것”이라며 “위기대응 시스템의 개선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늑장보고에 열받은 이 대통령

이 대통령은 이어 “우리 관광객들이 매일 찾는 곳인데 사고가 나면 우리 측 당국자가 즉시 현장에 달려가는 대응체계가 당연히 갖춰져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며 “통상적인 행정마인드로 대응한 게 아니냐. 이런 상황을 국민이 과연 납득하겠느냐”고 지적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통일부는 11일 오전 11시30분 현대아산으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뒤 오전 11시45분쯤 엄종식 청와대 통일 비서관에게 보고했다. 엄 비서관은 곧장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보고했고, 김 수석도 전화로 정정길 대통령실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에 대한 첫 보고자는 김 수석이었고 시간도 오후 1시30분이었다. 현대아산이 통일부에 보고한 뒤 두 시간이나 지나서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또 다른 관계부처에서 질병에 의한 사망이라는 잘못된 보고가 올라가는 바람에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느라 대통령에 대한 보고시간이 늦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내 혼선이 초기 대응의 미숙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이 피격 사실을 보고받고서도 오후 2시 국회 개원연설에서 ‘남북 간 전면적 대화’를 제의한 것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국회로 떠나기 직전 총격사건을 보고받은 뒤 비서관들이 긴급 구수회의를 열었다”며 “국회 연설에서 남북관계 부분은 빼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많아 말씀드렸는데 대통령이 ‘예정대로 하자’고 하셨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남북 간 비상상황이 발생한 마당에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제의한 게 과연 적절했느냐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더욱이 청와대는 당초 이번 제의를 8·15 기념식에 맞춰 내놓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우리 정부 회심의 ‘히든 카드’를 아깝게 허비해 버렸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가 피격 사실을 오후 3시쯤 처음 공개한 사실도 논란거리다. 북한군이 우리 민간인을 총격 사살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현대아산으로부터 보고받은 뒤 3시간 반 동안이나 발표를 미룬 것은 너무 안이한 대응이 아니었느냐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국회연설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개하느라 지체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도 이날 회의에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정부는 어떤 경우라도 단 한 명의 국민 생명도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책임진다는 자세로 이번 사건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시간대에 저항 능력도 없는 민간인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신속한 진상 규명과 후속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