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평양의 총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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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4일 평양(平壤)한복판에서 울려퍼진 총소리에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북한지도층이건,우리 국민이건,주변 국가건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북한경비병을 사살하며 러시아 무역대표부에 들어가 망명을 요구하던 한 젊은이가 결국 죽었지만 사건이 지닌 엄청난 상징성 때문이다.
우리는 불과 한달사이에 상상도 못하던 경험을 하고 있다.북한외교관부부의 망명,김정일(金正日)과 동거했던 여인의 잠적에 이은 이번 총격사건은 긴 안목에서 북한체제에 대한 조총(弔銃)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여러 징후들은 한 사회가 쇠락해가는 요소를 하나 하나 보여주고 있다.경제난등 체제의 구조적 모순은 말할 것 없지만 상층부의 권력투쟁 냄새,체제지탱세력의 이탈등을 우리는 보고 있다.성혜림(成蕙琳)여인의 잠적에서 권력암투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고,외교관과 외환딜러의 망명에서 이들 계층이 지닌 체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읽을 수 있다.그런 터에 빚어진 이번총격사건은 이제 북한체제의 심장부에서조차 철통같던 통제력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한반도의 안정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냐는 문제다.우리체제의 우월성에 대한만족감을 가지면서도 사태의 불확실성 때문에 막연하나마 불안감을떨치지 못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북한체제의 불안정에서 올지도 모를 부작용 때문이다.최근의 잇따른 충격적 사건으로 북한지도층의 자포자기적인 도발가능성을 비롯,대규모 탈북자(脫北者)가발생할 경우등 걱정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따라서 온갖 예상가능한 사태를 대비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일시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논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요즘처럼 예측불가능한 일이 잦은데 대비해 이제는 상시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범정부적 기구를 운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망명.탈북자들의 보호를 위 한 외교활동 강화,북한의 실상에 대한 정확한 판단,대북(對北)경계태세 강화,돌발사태에 대비하는 체계적 준비등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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