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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칼럼>법 바로 세우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우리 선거를 돌아보면 두어가지 불가해(不可解)한 일들이 있다. 그 하나는 선거기간에 후보 주변의 누군가가 사망하면 그 후보가 당선된다는 것이다.13대 선거때다.
강원도의 한 선거구에서 투표일 전날 한밤중에 여당 후보 선거운동원들과 야당 후보 운동원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여당측은말썽을 피 해 현장에서 철수하려고 차를 후진시켰는데 거기에 야당운동원이 깔려 죽었다.야당측은 그 시신을 메고 시가행진을 했다.여당 후보의 압도적인 우세는 그 사건으로 투표날 뒤집혔다.
선거운동을 해주던 한 친척이 선거판의 싸움과 전혀 관련없는 교통사고로 죽은 덕분에 당선됐다는 의원도 있었다.모두 인정(人情)에 끌리는 우리 유권자들의 투표성향 때문이다.
구속되면 당선된다는 말도 있다.5공후 첫 선거인 11대 총선에서 돈 많은 한 야당 후보가 상대방 후보의 운동원을 매수하다적발됐다.명백한 범법행위였다.운동원을 매수당했던 후보는 주위의만류를 물리치고 『법대로 한다』며 그 후보를 고발했고 그는 구속됐다.그러자 그 후보의 부인이 검은 상복을 입고 시장이며,유세장이며 울고 다녔다.그것으로 선거의 승패는 결정돼 버렸다.
92년 선거에서도 경남의 한 후보가 돈을 주다 걸렸다.현장이사진으로 포착돼 온 신문에 게재됐다.그런데 일단 그 후보가 구속되자 동정심은 그에게로 모아졌다.그 후보는 옥중에서 당선됐다.여기에도 우리 국민 특유의 온정주의(溫情主義) 가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목해야 할 다른 요소가 한가지 더 있다.즉구속자에 대한 지지는 곧 정부의 탄압에 대한 소극적 항거였다는것이다.자유당 독재시절,그리고 30여년의 군부 철권통치 시절 구속은 곧 야당 탄압의 가장 뚜렷한 증거였고 따라서 구속자에게표를 던지는 것이야말로 독재에 대한 소리없는 저항정신의 한 표현이었던 것이다.거기에는 통치자의 자의에 따라 정치적으로 운용되는 법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일부 후보는 이런 허점을 악용해 자해(自害)행위를 하 기도 하고 범법과 구속 사이를교묘하게 넘나드는 탈법을 자행하기도 했다.
최근 광주민주화항쟁과 12.12사태의 핵심들이 5.18특별법으로 구속기소되자 「구속=당선」이라고 주장하면서 미리 육성(肉聲)녹음을 하는등 옥중출마 준비를 해뒀다고 한다.그들은 이 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놓고 있■ 하지만 구속이나 재판절차가 약자(弱者)에 대한 탄압으로 비칠 것이라고 기대하는 모양이다.문민정부의 자의적인 법운용의 희생자로 비춰지면유권자의 동정심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표적사정(標的司正)이니,「검찰정치」니,예전의 「사찰(査察)선거」비슷한 말들이 다시 나오고 있다는 것은 법불신 상태가 여전히 우려할 만한 수위라는 증좌다.
선거분위기가 점차 고조되면서 일고 있는 신관권(新官權)시비도그 한 단면이다.중앙과 지방이 서로 의심하고 경찰과 단체장들이반목한다.선거때마다 관권.행정선거 시비가 일어도 군수 한명,구청장 한사람 잡혀간 일이 없었는데 이번엔 시장 과 구청장이 잡혀가고 단체장들이 내사당하고 있다고 한다.그것이 결코 구청장이나 시장.군수들이 야당출신이기 때문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선거법에 딱 떨어지게 위반되는 출판기념회를 한 혐의로 한 야당 후보가 구속됐는데도 누구 하나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여당 후보는 그보다 더 큰 규모의 모임을 가졌는데도 아무 탈없이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법의 형평성이 흔들리고 공정성이 의심받게 된다.이러다간 5.18이나 12.12 핵심들까지도 무슨 희생자들처럼 비춰질까 걱정이다.역사를 바로세우기 전에 법부터 바로세우는 일이문민정부의 더 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깨 닫고 있는지 모르겠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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