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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43> 반은 내뱉고, 반은 삼키는 선악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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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알게 됐죠. 그들은 잎을 따서 벗은 몸을 가렸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뒤 ‘죄’를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의 후예는 ‘원죄’를 안고 태어난다고 하죠.

그런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아담과 이브는 어땠을까요.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성경에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라고 돼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었죠. 그래서 그들과 하나님, 그 사이에는 ‘틈’이 없었겠죠. 그러니 하나였겠죠. 하나님 속에 세상의 모든 창조물이 있고, 모든 창조물 속에 또 하나님이 계실 테니 말입니다. 최초의 인류도 그랬겠죠.

그런데 ‘선악과’로 인해 ‘틈’ 이 생기고 만 겁니다. 하나님과 인간, 그 사이에 ‘죄 또는 죄의식’이란 간격이 생기고 만 거죠.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속에서 더 이상 하나님을 찾기가 힘들어진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겠죠. 인간과 하나님, 그 사이의 ‘틈’을 메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무슨 뜻일까요. ‘원래는 하나님이 너희 안에, 또 너희가 하나님 안에 있었다. 모든 창조물이 그랬다. 그런데 ‘선악과’로 인해 너희가 멀어졌다. 그러니 다시 와라. 나를 통해 하나님 안에 너희가 거하고, 너희 안에 하나님이 거하게 하라.’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겠죠.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산상설교에 등장하는 ‘사람형’을 살펴 보세요. 마음이 가난한 자, 온유한 자, 자비를 베푸는 자, 마음이 깨끗한 자 등. 그들은 모두 누구를 닮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최초의 인류를 닮았겠죠.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인간을 닮았겠죠. 그러니 산상수훈은 ‘가난한 마음, 온유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 깨끗한 마음을 통해 선악과 이전의 인간으로 돌아가라’는 예수님의 절절한 메시지로도 들리네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악과’로 인해 틈이 생겼으니 틈을 없애려면 ‘선악과’의 흔적을 없애야겠죠. 그런데 ‘선악과’는 하나의 덩어리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악과(善惡果)’를 선과(善果)와 악과(惡果)로 나누고 맙니다. 그리고선 “아, 이런 마음은 나쁜 거지. 이런 행동은 악한 거지. 그러니 회개해야지. 기도로 용서를 빌어야지”라며 악과를 버리려 무진장 애를 씁니다.

‘선과’에 대해서는 태도가 다릅니다. ‘아, 이번 달에는 계명을 빠짐없이 지켰네. 뿌듯하네’ ‘오늘은 가난한 이웃을 많이 도왔네. 나 자신이 정말 자랑스럽네’ ‘나는 십일조를 빠짐없이 내잖아. 그러니 하나님도 알아주시겠지.’ 결국 악과를 먹은 나는 버리려고 하지만, 선과를 먹은 나는 키우려고 하죠. 악과만 내뱉고 선과는 삼키려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삼킨 선과가 온전히 소화될까요. 흔적이 남지는 않을까요. 선한 행동을 한 뒤 뿌듯해 하는 나, 그래서 잘난 척하는 나, 자랑스러워하는 나, 선행의 결과물에 짙게, 짙게 물들어버리는 나, 그래서 사랑의 실천마저 ‘훈장’으로 여기는 나. 이런 ‘나’가 모두 선과를 따먹은 흔적들 아닐까요. ‘죄를 범했구나’하며 죄의식을 가진 내가 악과의 흔적이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죠.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남들이 모르게 하라는 얘기일까요? ‘현문우답’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모르게, 즉 내 마음에 남지 않게 하라는 얘기 아닐까요.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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