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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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여기에서 소외되면 정보사회에서 탈락되는거라고 잔뜩 겁주는 고층건물,사람과 자동차만 바라보다 한 걸음만 도시 밖으로 나오면산과 나무와 하늘이 나도 있노라고 모습을 드러낸다.
비록 잎은 졌지만 여전히 산은 산이고 나무는 나무이고 물은 물이다.진실은 이렇게 가장 단순하고 쉬운 곳에 있는데 왜 우리는 늘 더 편리한 것을 찾는다면서 복잡한 쪽으로 가고있는지 알것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역사에 자취를 남긴 위대한 사람들의 고전을 읽다보면 그분들이한 일이 아주 쉽고 평범한 것을 어떻게 하면 어렵게 얘기해줄까고심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무덤 속에서 그분들이 진노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떨까.그렇게 단순하고 흔한 것이 아니면 어떻게 후배들이 새롭다고 의기양양하게 내놓는 이론들이 모두 당신들의 손바닥 안에 있겠느냐고.
이것인줄 알고 이 길로 쭉 나갔는데,그리고 아,이젠 다 됐나보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그와 정반대였음이 드러나고 그것이 삶의 진실임을 깨닫는 것.이 반전과 발견이 우리 삶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삶의 가장 단순한 진실을 예 술에 빗대 복잡하게 얘기한 것은 아닐까싶다.그는 비극의 핵심을 플롯으로 보았다.아니 좀더 넓히면 우리가 기쁨을 느끼는 미학 그 자체를플롯으로 보았다.플롯이란 몰래 꾸며지는 음모라는 뜻이다.
물론 그가 주장한 완벽한 유기적 구성은 시대에 따라 도전을 받는다. 그러나 스치듯 지나가는 서술자의 서술이냐,인물의 자기표현이냐등 자세히 읽어보면 이미 그속에 리얼리즘.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양식이 모두 배태돼 있다.
더이상 플롯이란 없다고 난리를 치던 포스트모던 소설도 독자가그걸 찾게 돼있을 뿐 적절한 긴장,반전과 발견에 의한 그 긴장의 해소가 없으면 감동을 주지 못한다.
남의 삶이 음모로 이뤄짐을 보며 쌓인 긴장을 해소시키는 게 미학적 기쁨이다.
그리고 이 카타르시스가 정치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암시다.이런 글 속에서 스승인 플라톤을 이겨내려는 그의 음모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예술의 속임수를 공화국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선배에게 은밀히 그 속임수가 곧 우리 삶이 아니냐고 암시하는 후배.맞수를 의식하지 않는 좋은 글은 드물고 이 반전을 시도하는 긴장이글맛을 낸다.
아마도 모든 진리는 너무도 단순해 늘 복잡함 속에 숨겨져야 하는가보다.
그 단순함과 평범함이 역사를 움직이는 힘인 것을 감추기 위해서. (경희대교수.문학평론가) 권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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