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선거와 텔레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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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정치 돌풍의 주역 뉴트 깅그리치 미국 하원의장은 얼굴이 세개라고 한다.「세명의 깅그리치」로 불린다.전국 네트워크 TV 방송의 뉴스시간에 30초동안 등장하는 깅그리치가 첫번째다.그가한 말 중에서 자극적이고 말썽이 될만한 부분만 항상 전파를 탄다.의회 케이블TV C-SPAN에 10여분씩 등장하는 깅그리치가 두번째다.10분이상 전후 좌우 문맥(文脈)에서 그의 말을 들어보면 「30초짜리 깅그리치」와는 딴판이다.그를 만나 직접 얘기를 나눠보면 또 다른 깅그리치를 발견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중들은 30초짜리 「문제의 깅그리치」만 항상 접한다.여론의 반응이 좋지 않아 공화당은 선거전략상 그의 등장마저 자제시키는 요즘이다.제한된 몇십초동안 어떻게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공인(公人)의 얼굴은 달라진다.선거 때는 두말 할 여지가 없다.TV 매체의 위력이다.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를 뽑는 예비선거전에서 스티브 포브스의 돌풍 또한 TV의 위력이다.TV 정치광고에 그는 1천8백만달러(1백40억원 상당)를 이미 쏟아부었다.첫 격전지인 뉴 햄프셔주의 한 TV는 포브스광고가 너무 많아 「포브스 채 널」로도 불린다.그의 정치광고는 돈자랑만은 아니다.
기존의 정치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에게 『정치인이 아니니 나를뽑아달라』는 호소가 파고든다.게다가 색다른 것을 찾는 TV 카메라들이 이 새 얼굴을 계속 쫓아다닌다.새 인물을 처음 소개할때는 자연히 좋은 점을 들춰 부각시킨다.「허니 문(蜜月)기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언론들이 그의 「뒤」를 들춰내기 시작하면 판도는 달라진다.「돈으로 대통령 자리를 사려 든다」는 비판들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따로 정치광고의 기회가 없는 우리 현실에서 TV의 선거 보도는 그 영향력이 막중하다.여야에 똑같이 몇십초를 할애하는 산술적 형평이 「공정」은 아니다.무엇을 어떻게 부각시킬 것이냐는 주관적 판단이다.어느 한쪽에서라도 항의를 받는다면 그 「공정」은 문제가 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를 전하는 「카더라 방송」을 넘어 제기된 주장들을 하나의 이슈로 묶고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유도해가는 안목이 아쉽다.포스트모던 시대의 소위 「컨셉추얼(conceptual)정치 저널리즘」이다.불공정 시비를 뛰어넘는 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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