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08 베이징 D-30] ‘올림픽 코드’가 중국을 바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촛불 정국에 파묻혀 있던 베이징 올림픽 대회가 어느새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 올림픽 이후 꼭 20년 만에, 그리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세 번째로 열리는 이번 대회는 우리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프랑스 국제 전략관계 연구소의 파스칼 보니파스 소장은 아테네에서 처음 열렸던 근대 올림픽과 2004년 같은 아테네의 28회 대회의 비교를 통해서 글로벌화의 지정학적 의미 변화를 분석했다. 13개국의 참가국이 200개국을 넘게 되고 285명의 선수단이 1만5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작 수천 명밖에 되지 않던 구경꾼이 텔레비전 관전을 포함해 40억 명의 천문학적 숫자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올림픽의 세계화 못지않게 아시아의 지역화에 대한 의미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올림픽의 지정학을 통해서 우리는 근대 문명의 축이 서구에서 동아시아로, 해양 파워에서 대륙 파워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징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서양에는 문명 서진설(西進說)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올림픽 역사를 통해서 보면 분명 잡히는 구석이 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올림픽은 그 발상지에서 유럽대륙을 횡단해 대서양을 건너 영국·미국으로 오고, 다시 미국의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한 올림픽의 문명 바람은 마침내 일본 도쿄 올림픽으로 아시아 지역으로 넘어왔다. 거기에서 계속 서진한 것이 한반도의 서울 올림픽이었으며 한 발짝 더 서쪽 대륙으로 다가선 것이 베이징 올림픽이다. 개최지만이 아니다. 도쿄에서는 유도가, 서울에서는 태권도라는 민족 고유의 경기가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비록 공식 종목으로 부결되기는 했으나 중국 전통무술은 올림픽 개최 기간 상하이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서 공개경기로 인정받았다. 분명히 아시아 문화의 세계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명의 암호 해독법을 통해서 보면 베이징 올림픽은 서울 88 올림픽의 연장선상에 있는 아시아 트렌드다. 우연한 일치이기는 하나 2008년 8월 8일로 개막일을 잡은 베이징 올림픽은 서울 올림픽을 88 올림픽으로 불렀던 8의 수와 암합한다. 그 숫자 상징의 근원을 따져보면 그 발음이 발전을 의미하는 한자의 ‘發’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댄싱 차이나의 춤추는 사람 모양의 엠블럼 역시 한자의 ‘京’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물론 북경의 경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일본의 동경(東京), 한국의 서경(西京)의 경우에서 보듯이 한자문화권의 공유물이다. 그것은 올림픽의 주류를 이뤄 왔던 알파벳 문화가 한자문화권과 융합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터넷상에서 한자 사용 인구가 영어를 비롯한 알파벳 문화권을 능가하게 될 것이라는 네그로폰테의 예언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베이징 올림픽의 주조를 이루는 붉은 색 이미지 역시 레드 차이나의 이념 색이라기보다는 ‘벽사(<8F9F>邪)’를 뜻하는 아시아의 전통적인 축제 색이다. 근대 올림픽의 오대주를 의미하는 오륜마크 자체가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아시아의 기층문화인 역(易)과 오행사상으로 해석된다.

그것이 바로 바다(水)를 상징하는 베이베이(貝貝), 산림(木)을 뜻하는 징징(晶晶), 성화의 불(火)을 나타낸 환환과 대지(土)의 잉잉(迎迎)이다. 그리고 하늘을 상징하는 니니의 오륜과 오행을 동시에 나타내는 다섯 개의 마스코트 후와(福娃)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마스코트의 영문 명칭인 ‘프렌들리즈(Friendlies)’가 말썽이 되어 결국은 도중하차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영어로도 맞지 않고 얼핏 들으면 ‘친구가 없는 (Friendless)’으로, 혹은 ‘친구가 거짓말을 한다(Friend lies)’로 읽힐 우려가 있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이 작은 문제 하나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듯이 동서가 어울릴 때 생기는 문화충돌이나 오해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베이징 올림픽의 성패를 읽는 중요 포인트가 된다. 한마디로 세계 속의 한·중·일 삼국의 앞날을 푸는 암호 해독의 난수표가 바로 베이징 올림픽 현장에 있다는 이야기다.

올림픽이 일찍이 글로벌 모델의 원조요 척도가 된 것은 피부색이 다르고 이념과 문화의 색깔이 달라도 스포츠 경기의 규칙과 양식은 동일하다는 데 있다. 이 세계의 ‘보편 언어’가 있기 때문에 정치·경제·문화를 넘어선 글로벌리즘의 희망이 가능해진다. 민족 우월성의 선전장이 됐던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에서 히틀러는 미국의 흑인 선수 오언에게 금메달을 빼앗기게 되자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과 싸워서 진 것뿐”이라는 망언을 했다. 아마도 세계인이 베를린 올림픽에 숨겨진 나치의 암호를 일찍부터 읽을 줄 알았더라면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이란 비극은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베이징 올림픽에 쏠린 세계인의 관심과 비판은 인권·환경·위생·윤리, 그리고 테러로 이어지는 안전 문제 등이다. 아무리 경제력과 기술력이 있어도 인류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고서는 올림픽을 개최할 나라가 될 수 없다. 연다 해도 성공할 수 없다. 2000년 올림픽 개최지 결정 때 베이징이 1, 2차 투표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고서도 3차에서 시드니에 고배를 마셨던 것도 그런 글로벌리즘의 눈높이에 이를 수 없는 핸디캡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구 외교로 미국과 중국 간 정치 체제의 벽이 뚫린 것처럼 올림픽의 스포츠 정신을 매개로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베이징 올림픽 슬로건이 탄생해 중국이 더욱 개방 체제로 나가게 된다면 서울 올림픽의 개·폐회식에서 보여준 ‘벽을 넘어서’의 새로운 버전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그동안 베이징 올림픽은 여러 벽에 부닥쳤다. 여배우 미아 패로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베이징 올림픽을 ‘The Genocide Olympics(大虐殺五輪)’이라고 부르면서 티베트의 악몽을 감춰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 2005년 미국 하원에서는 중국 정부의 티베트 문제와 양심·표현·신앙·결사의 자유 등을 들어 인권 침해를 중지하지 않는 한 올림픽 개최지를 바꿔야 한다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예술고문이었던 스필버그는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해서 인권 유린을 하는 독재국과 타협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결국 올해 2월 그 고문직을 사임했다. 이 밖에도 위구르의 인권 탄압과 베이징 시가지 강제 수용으로 인한 주민 탄압, 공개 처형 등 국내외의 인권·윤리 문제들이 글로벌 문제로 표면화했다.

그중에서도 환경 문제는 심각한 글로벌 이슈로 떠올랐다. 베이징 시내의 대기오염으로 선수에게 피해를 준다고 해 영국 수영대표 선수단은 일본 오사카에서 최종 훈련을 한 다음 시합 직전 경기에 임하겠다고 했으며 구미 24개국도 시합 전 합숙지를 외지에 두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인 에티오피아의 마라토너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 악화를 이유로 결장 의사를 밝혔 다. 세계 각지에서 노출된 중국 상품의 유해물질 문제로 선수의 위생과 식품 안전에 적신호가 켜졌고 중국 서포터들의 과격한 응원과 폭력도 도마에 올랐다.

중국은 이 모든 문제들에 답하기 위해서 그린 올림픽을 선언했다. 석탄 연소 보일러의 개량, 자동차 배기가스 등을 비롯해 20개의 구체적인 환경 대책 목표를 세우고 10년 동안 122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실제로 베이징시의 오수 처리는 1999년만 해도 하루 108만t이었던 것이 2006년에는 250만t으로 늘었다. 시가지 오수의 90%가 처리된 셈이다. 인권·윤리 문제도 개선을 약속하고 있다.

전쟁은 수출할 수 있어도 평화는 수출할 수 없다는 말이 거짓임이 증명된 셈이다. 그동안 올림픽 게임을 통해서 인류는 보편적 문화의 가치를 확산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셈이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베이징 올림픽은 로컬리제이션과 글로벌리제이션이, 구체적으로는 말하자면 동서를 하나로 잇는 보편적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장치다. 지구의 속살을 비쳐볼 수 있는 내시경이며 인류 문화의 진화를 기록하는 블랙박스가 곧 올림픽의 메타포다.

우리는 베이징 올림픽의 암호 해독을 통해서 과연 정치·경제·문화의 모든 면에서 스포츠와 같은 룰을 지키는 게임을 하고 있는지, 환경·윤리·인권·식품 위생 등 과연 올림픽을 먼저 치른 한국이 중국보다 앞서 있는지 글로벌리즘의 그 눈높이와 문명의 키를 재 봐야 할 것이다.

‘관심’ ‘관찰’ ‘관계’의 세 관자를 가지고 베이징 올림픽의 깊이 읽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어령 본사 고문


본사 이어령 고문 지난 칼럼리스트

▶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후기 정보화사회를 향하여
▶ 이어령 말의 정치학
▶ 이어령의 新전쟁 문화코드
▶ 이어령의 미래가 보이는 마당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