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머 '전설속으로'…50년 연속 출전 마스터스 고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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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널드 파머가 2라운드 6번홀(파3)에서 티샷을 홀컵 부근에 붙인 뒤 환호하는 갤러리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하고 있다. 마스터스 50년 출전의 마지막이었던 이날 그는 18홀 내내 갤러리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오거스타 AP=연합]

지난 10일(한국시간)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18번홀(파4.423m).

'살아있는 골프 전설' 아널드 파머가 드라이브샷을 날렸다. 공은 유난히 좁은 페어웨이 양옆에 빽빽이 들어선 갤러리 사이로 200m쯤 날아갔다.

천천히 페어웨이를 걸어나가는 백발노장. 갤러리는 멈춤 없이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그는 손을 흔들거나 엄지를 치켜세우며 답례했다. 두번째 샷. 그린까지 200여m가 남은 오르막을 향해 그는 다시 드라이버를 잡았다. 페어웨이에서 드라이버로 친 공은 그린 앞 40m 지점에 멈췄다.

페어웨이를 오르는 74세 파머의 발걸음은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린까지 꽉 들어찬 갤러리의 계속되는 환호가 그를 인도하는 듯했다. 신중한 어프로치로 그는 공을 컵 1m 가까이 붙였다.

이윽고 마지막 퍼트. 마스터스에서 그가 치는 마지막 공은 홀컵을 스치고 지나갔다. 보기였다. 그리고 규정에 따라 그는 컷오프됐다. 하지만 그는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수천의 갤러리가 18홀 내내 그를 따라다니며 존경을 표했고, 고별무대를 기념해 줬다.

1955년 마스터스 첫 출전에 공동 10위. 2004년 93명의 출전선수 가운데 92위.

그는 지난 50년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골프장을 밟았다. 네번을 우승했다. 1958, 60, 62, 64년이다. 그가 거둔 메이저 7승 중 4승. 그래서 마스터스에 대한 파머의 애정은 각별하다.

팬들의 갈채 속에서 파머는 다시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이제 다 끝났다. 하지만 끝났다고 해서 기쁘다는 말을 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 "팬들이 내게 너무나 따뜻하게 대해줬다. 갤러리가 내게 행운을 빌어주는 것을 볼 때면 내가 얼마나 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지…"라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는 "앞으로도 여기 돌아와 어떤 형태로든 이 대회의 일부가 되고 싶다. 베란다에 앉아 내가 5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다른 선수들이 헤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라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회 챔피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년 전 오거스타 골프장의 회원이 됐다.

사업가로서도 명성을 날려 그의 이름을 딴 골프용품과 의류는 '명품'이 돼 있다. 그는 지금 플로리다주 베이힐 골프장의 소유자로 해마다 베이힐 인비테이셔널 골프대회를 열고 있다.

오거스타=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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