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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 머천다이저(MD), 상품을 기획하고 파는 전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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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상품과 소비자를 잇다=MD는 상품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상품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책임자이자 결정권자다. 업무 영역은 폭넓다. 상품을 기획해 만들어 내고, 특색 있는 상품을 발굴해 구매한다. 시장조사와 자료분석을 판단 근거로 삼는다. 마케팅과 판매기법, 재고관리까지 통제한다. 상품 판매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MD는 최전선의 보병과 같은 역할이다. MD는 유통업체 또는 제조업체에 속하거나, 무역상사의 바잉 오피스(buying office)에서 근무한다. 구매를 대리한다는 의미로 바이어(buyer)라고도 부른다. 백화점·대형마트·TV홈쇼핑·온라인쇼핑몰 등 유통 채널이 다양해지고, 업종 간 또는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MD의 역할과 수요가 커지고 있다.

◇파워 MD의 등장=유통업체의 힘이 세지면서 선두 업체의 MD들은 웬만한 중견기업 매출액과 맞먹는 금액의 상품을 다룬다. 롯데백화점 송정호(42) 여성캐주얼MD팀장은 팀원 10명과 함께 연간 1조10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관리하는 브랜드는 100여 개. 입점 브랜드를 선정하고, 퇴출 브랜드를 골라낸다. 이마트 채소MD인 이명근(35) 대리는 배추·무 등을 연간 500억원어치 판다. 국내 생산량의 3~5%쯤으로 추산된다. 그는 “지난해 비가 많이 와서 김장배추 시세가 급등했을 때, 사전계약재배 덕에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일주일에 10억원어치 파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GS홈쇼핑 이·미용팀MD인 나병우(38) 차장은 색조화장품인 ‘루나 바이 조성아’를 제조업체(애경)·메이크업 아티스트(조성아)와 공동 개발해 대박을 터뜨렸다. 출시 1년9개월 만에 600억원어치를 팔았고, 올 상반기 회사 내 판매 1위를 기록했다. 나 차장은 “MD의 역할이 단순한 상품 기획에서 인큐베이팅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전했다.

◇감각 있는 경영인=송정호 팀장은 MD에게 필요한 자질로 대인관계 능력과 상품에 대한 전문지식을 꼽았다. 협력업체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협상력도 갖춰야 한다. 트렌드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 것은 MD의 의무다. 여성캐주얼 의류를 맡고 있는 송 팀장은 20대의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홍대 앞 클럽이나 와인바를 드나들고, 주말에는 브런치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잠재 고객들을 관찰한다. 그렇다고 MD가 유행과 감각으로 승부하는 직업은 아니다. 결국 평가는 매출에서 나기 때문이다. 판매 계획과 예상 매출, 수익 구조, 재고 적정량 산출 같은 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자기 사업을 가진 경영인과 다를 게 없다. 전날 매출 동향에 대한 분석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MD들의 공통사항이다. 경쟁업체 정보 수집과 좋은 상품 선점 경쟁, 출장과 야근도 잦다. 이들 사이에 “MD는 ‘뭐’든지 ‘다’한다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MD가 되려면=담당 상품과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유통·경영학을 전공하면 유리하다. 의류 전공자가 패션MD를, 식품 관련 졸업생이 식품MD를 하는 식이다. 이마트 이명근 대리는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했다. 롯데백화점 여성캐주얼팀 MD 10명 중 절반가량은 의류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 GS홈쇼핑 나병우 차장은 화장품 회사 연구소와 브랜드 매니저를 거쳤다.

주요 유통업체에서 신입사원이 바로 MD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업이나 매장 근무 경험을 쌓은 뒤 MD로 배치받을 수 있다. MD보조나 인턴, 아르바이트를 통해 현장 경험을 쌓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롯데백화점 스포츠MD 김근우(28)씨는 대학을 휴학하고 6개월간 나이키골프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했다. 매니어도 MD가 되기 쉽다. 현대백화점 나이키MD 임한오(31) 과장은 운동화 매니어가 운동화 MD로 변신한 경우. 그는 지난 10여 년간 휴가를 홍콩과 일본에서 운동화를 사 모으는 데 보냈다. 운동화 300여 스타일을 보유한 수집가이기도 하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선배 한마디 / 신세계 명품구두 MD 김은겸씨
정성들인 상품기획 성공했을 때 짜릿

신세계백화점 김은겸(37·사진) 과장은 해외명품 구두MD다. 유럽과 미국을 돌며 크리스티앙르부탱·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 14개에서 구두를 사와 본점 ‘슈 컬렉션’ 매장에서 판다. 크리스찬디올의 패션MD와 SKM 면세점 바이어를 거쳐 12년째 해외명품 MD로 활약하고 있다.

-명품에 관심 많은 여성들이 부러워할 직업이다.

“신상품 컬렉션이나 해외출장 같은 화려한 면만 생각하기 쉬운데, MD는 결국 매출과 숫자로 판단을 받는다. 영업의 최전선이다. 실적이 좋지 않으면 한자리에 MD로 남아있기 쉽지 않다.”

-한 해 구매 규모는.

“현재 한 개 매장을 운영하므로 규모가 크지 않다. 연간 20억원이다.”

-구체적인 업무는.

“1년 단위의 업무 계획표대로 움직인다. 1년에 네 번 발주를 위해 해외출장을 간다. 그에 앞서 1~2개월간 다음 시즌 매출계획을 세우고, 구매 예산과 종류별 수량계획을 짠다. 상품이 입고되면 소비자 가격을 책정하고, 상품을 고객에게 알리기 위한 홍보·마케팅을 한다.”

-상품 발주 시 판단 기준은.

“상품과 고객은 항상 움직인다. 지난해 데이터가 올해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상의 속도보다 6개월쯤 앞서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연구하고,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개인 취향을 최대한 억제하고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발주해야 한다.”

-보람과 애환은.

“정성 들여 기획한 상품에 대한 반응이 좋으면 짜릿하다. 신상품을 과감히 시도해 성공했을 때는 새로운 트렌드를 선보였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반면 잘 될 것 같은 상품이 반응이 없으면 ‘왜 그랬을까’ 밤새워 연구한다. 해외의 최신 유행을 너무 앞서서 들여온 경우도 있고, 무난할 것이라는 예상이 밋밋하다는 반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MD에게 ‘직업병’은.

“언제 어디서나 담당 상품에 먼저 눈이 간다. 구두를 맡은 뒤로는 사람을 만나면 얼굴이 아니라 구두부터 본다. 이름은 기억 못해도 구두 모양은 기억난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글로벌화는 MD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상품 개발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점점 해외 구매가 늘고 있다. 외국인과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야 한다. 관련 학과를 나오면 기회가 더 많겠지만, 꾸준히 공부하는 게 전공보다 더 중요하다. 세상의 변화를 읽으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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