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쥐락펴락’의 원조, 일본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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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선진국 가운데 환율을 정부 뜻대로 쥐락펴락하는 곳으론 일본을 알아준다. 환율 조작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강력한 개입을 여러 번 했고, 실제 성공했다.

일본은 1985년 달러화 약세를 유도한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高)의 완급을 조절하기 위해 90년대 들어 본격 개입에 나섰다. 91년 이후 최근까지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 규모는 약 70조 엔에 달한다.

가장 유명한 게 95년 5~9월의 개입이다. 당시 대장성은 환율을 달러당 82엔에서 4개월 만에 104~105엔으로 끌어올렸다. 지휘자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698A>原英資) 전 재무관. 그는 금리 인하와 외환규제 완화를 병행해 개입 효과를 배가시켰다. 이 작전이 성공하자 뉴욕 타임스는 그를 ‘미스터 엔’으로 불렀다. 그는 이 별명을 교묘히 이용해 용의주도한 구두 개입을 계속했다. 조지 소로스와의 개인적 친분도 활용했다. 그와 소로스가 엔저(低)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 실제 시장이 그렇게 움직였다. 98년엔 거꾸로 급격한 엔화의 하락(환율 상승)을 막아내기도 했다. 그가 재무관 시절 행한 시장 개입 규모는 모두 8조6500억 엔이다.

일본은 그 뒤에도 엔고를 막기 위해 거액의 개입을 했다. 주요 사령탑은 미조구치 젠베에(溝口善兵衛) 전 재무관. 그가 쏟아부은 금액만 2003년 1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무려 35조2564억 엔에 달한다. 액수로는 ‘미스터 엔’의 4배다. 이로써 당시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30%나 불어났다고 한다. 그는 ‘미스터 개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본의 시장 개입이 약발을 낸 비결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엄청난 물량 공세와 확실한 정책의지다. 어느 쪽을 목표로 하든 한번 할 때는 확실하게 돈을 풀었다.

사카키바라 전 재무관은 98년 4월 10일 하루 사이 2조6200억 엔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엔 매입-달러 매도’개입을 해 환율 급등을 막았다. 확실한 ‘완력’으로 시장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이게 먹혀들자 시장엔 “대장성이 마음먹고 나서면 방향이 달라진다”는 인식이 퍼져 가벼운 구두 개입도 효과를 냈다.

물론 일본에서도 시장 개입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시장의 자율을 침해하기 때문에 언젠가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우려가 많다. 우쓰미 마코토 전 재무관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입은 열을 내리는 항생제이므로 많이 쓰면 효과가 약해진다”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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