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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 사이 한줄기 햇살처럼…넉넉한 ‘백제의 미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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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18면

볼 살이 보기 좋게 오른 40대 남성이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 온다. 그 오른쪽엔 스무 살 처녀가 앵두 같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시선을 내리깔고 있다. 반대쪽엔 개구쟁이처럼 생긴 소년이 천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가족 같기도 하고 동네 이웃 같기도 하다. 남자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본처, 왼쪽은 첩이라는 우스개 해석도 있다. 백제 불교문화와 조각기술이 그대로 담겨 있는 국보 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 이야기다.

1일부터 일반에 공개

흔히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이 불상은 충남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의 절벽에 새겨졌다. 가운데는 여래입상, 처녀는 보살입상, 소년은 반가사유상인데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여래입상의 미소가 압권이다.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해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가진 이 부처님은 아침 햇살이 정면으로 비치면 밝게 웃고 오후의 볕이 측면에서 들면 인자한 미소를 머금는다.

하지만 1965년 불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당국이 보호각을 설치한 뒤로는 햇빛 아래서 오묘한 미소를 볼 수 없었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백열전구를 장대 끝에 매달아 해의 위치에 따라 변하는 불상의 표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7년 말 당국은 보호각을 철거했다. 백제의 미소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불상을 관리하는 서산시는 올해 초부터 불상 표면에 낀 이끼와 먼지 흙 등을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백제시대에 조성된 후 처음으로 불상은 세수를 하고 온몸을 깨끗이 단장했다. 작업 중 여래입상 윗부분 등에 균열이 일부 발견되었는데 주사기를 이용해 경화 합성수지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보존처리도 마쳤다. 맑고 깨끗한 옛 미소가 다시 살아나 7월 1일부터 일반에게 선뵌것이다.

나라가 온통 혼란스럽다. 사람들의 눈엔 핏발이 서고 모두 목소리만 높일 뿐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4일에는 스님들마저 서울 시청 앞 거리로 나섰다. 오늘 아침 부처님의 미소를 따라 해 보자. 다른 사람을 향해 웃음을 짓고 좋은 말을 건네 보자. 한결 편안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사진·글=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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