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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밥상의 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9호 07면

일러스트 강일구

SBS TV 드라마 ‘식객’ 팬들은 지난 화요일 6회를 보고난 뒤 “이제 ‘식객’이 제대로 시작됐다”고 평했다. 6회에서 주인공 성찬은 화려했던 ‘운암정’을 떠난 뒤 트럭을 몰고 야채 장사를 하면서 운암정에 칼을 대주던 대장간 노인을 찾아간다. 그와 함께 교도소에 있는 노인의 아들을 찾아가 맛난 양념게장요리를 먹인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죽기 전에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먹이고픈 병든 아버지의 마음, 자식이 맛있게 먹는 밥상을 보며 흐뭇해하는 그의 모습 앞에 닫혀 있던 아들의 마음이 열리는 모습은 짠했다. 이전 편에서 화려한 궁중음식 대결로도 느끼지 못했던, 한 끼의 음식에 담긴 사람 간 소통의 의미를 제대로 전해주는 대목이었다.

‘식객’이 만화와 영화에 이어 드라마로도 사랑받는 건 허영만의 원작이 워낙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수작인 덕이 크지만, 음식이 지닌 보편성과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요리라는 것은 참으로 독특한 예술이다. 오랜 시간 수고를 들이고 혼을 담아 내놓는 건 다른 예술작품과 같지만 요리는 ‘먹는다’는 본능을 대상으로 한다는 데서 여타 예술과는 또 다른 차원에 놓인다. 요리는 그저 배고픈 사람의 끼니를 때우는 수단일 수도 있고 고상한 미식가의 감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리를 가장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이 창작행위가 그 결과물이 ‘사라지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어느 예술작품도 없어지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요리는 사람의 배속에서 없어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예술품이다. 보존하려야 보존할 수도 없고 후손에게 그 감동을 남기려야 남길 수도 없는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이고 소박한 감정은 아마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곧 사라질 것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쌓아 올리는 행위.

궁중요리의 명가 운암정에서 대령숙수를 중심에 두고 벌어지는 ‘식객’ 초반부의 전개와 화려한 음식 대결은 갈등구도를 만들어내며 눈길을 모으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수많은 에피소드들로 이뤄져 있는 원작에서 중심 줄거리를 잡아내면서 전개도 빠르게 진행됐다. 그렇다 해도 시청자들이 애초 ‘식객’이라는 음식 이야기를 통해 느끼고 싶었던 소박한 정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잇따라 소개되는 궁중음식의 화려한 눈요기도 왠지 절실하게 허기를 자극하지 못했던 이유가 거기 있어 보인다.

이제 주인공 성찬이 길거리로 나서는 중반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또 다른 기대를 품게 한다. 원작이 워낙 많은 양의 정보를 백과사전식으로 다루고 있어 비교하기는 좀 그렇다. 원작만화가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것은 사소한 먹거리 하나에 들어간 갖은 정성과 그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이었고 그 독특한 매력 때문에 사소한 음식이 사소해 보이지 않았다. 한낱 작은 손길 하나로도 그 맛을 달리하는 각종 음식들의 재료와 그 결과물로서의 요리를 재발견해 내면서 그것에 깃든 사람과 요리 자체를 존중하는 분위기 말이다.

사람 간의 갈등이나 대단한 스토리 전개 같은 것을 앞세우기보다 음식 자체에 상당한 의미와 존경을 맨 앞에 두는 것이 진정한 웰빙시대의 콘텐트 형식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전개될 드라마 ‘식객’ 역시 그런 분위기를 더욱 담아냈으면 싶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filmpoo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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