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온달산성의 평강공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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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충북단양군영춘면하2리에 있는 온달산성에서 엽서를 띄웁니다.1천4백년전의 과거로부터 띄우는 이 엽서가 당신에게 어떻게 읽혀질지 망설여집니다.
이곳 온달산성은 둘레가 6백38에 불과한 작은 산성입니다.그러나 사면이 깎아지른 산봉우리를 테를 메우듯 두르고 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투사같습니다.결연한 의지가 풍겨오는 책성(책城)입니다.그래서 쉽게 접근 을 허락하지않는 성이었습니다.다만 하2리 마을 쪽으로 앞섶을 조심스레 열어 산성에 이르는 길을 내어주고 있었습니다.
산중턱에 이르면 사모정(思慕亭)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전사한 온달장군의 관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자 평강공주가 달려와눈물로 달래 모셔간 자리라 전해지고 있습니다.이 산성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평강공주를 만나는 자리입니다.나는 사모정에서 나머지 산성까지의 길을 평강공주와 함께 올라갔습니다.
아래로는 남한강을 배수의 진으로 하고 멀리 소백산맥을 호시(虎視)하고 있는 온달산성은 유사시 백성들을 입보(入保)시키는 성이 아니라 신라에 빼앗긴 실지를 회복하기 위한 전초기지였음을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망루나 천수각(天守閣)이 없어도 적병의움직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眺望)이었습니다.조령과 죽령서쪽 땅을 되찾기 전에는 다시 고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의가지금도 느껴집니다.
나는 반공(半空)을 휘달리는 소백산맥을 바라보다 문득 신라의삼국통일을 못마땅해하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하나가 되는 것은 더 커지는 것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내주기로 하고 이룩한 통일은 분명 더 작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통일이 아니라 광활한 요동 벌판의 상실에불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이러한 상실감은 온달과 평강공주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더불어 이 산성을 찾은 나를 매우 쓸쓸하게합니다. 평강공주 이야기는 당시 사회 경제적 변화의 와중에 부(富)를 축적한 평민계층이 지배체제의 개편과정에서 정치.경제적상승을 할 수 있었던 사회변동기였다는 사료(史料)로 거론되기도합니다.그리고 「바보 온달」이란 별명도 사실은 온달의 미천한 출신에 대한 지배계층의 경멸과 경계심이 만들어낸 이름이라 분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창작하고 그 후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승낙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믿습니다.다른 어떠한 실증적 사실(史實)보다 당시의 정서를더 정확히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완고한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미천한 출신의 바보 온달을 선택한 평강공주의 결단과 드디어 용맹한 장수로 일어서게 한 그녀의주체적 삶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이것이바로 온달설화가 당대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매몰 된 한 농촌청년의 우직한 충절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까닭이라고 생각됩니다.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뛰어넘어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는 비약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평강공주와 함께 온달산성을 걷는 동안 내내 「능력있고 편하게 해줄 사람」을 찾는 당신이 생각났습니다.「신데렐라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당신이 안타까웠습니다.현대사회에서 평가되는 능력이란 인간적 품성이 도외시된 「경쟁적 능력」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낙오와 좌절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으로,한마디로 숨겨진 칼처럼 매우 비정한 것입니다.그러한 능력의 품속에 안주하려는 우리의 소망이 과연 어떤 실상을 갖는 것인지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기억할 것입니다.세상 사람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현명한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우직한 어리석음,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편안함」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은 물입니다 .
당신은 평강공주의 삶이 남편의 입신(立身)이라는 가부장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만 산다는 것은 살리는 것입니다.살림(生)입니다.그리고 당신은 자신이 공주가 아니기 때문에 평강공주가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살림이란 「 뜻의 살림」입니다.세속적 성취와는 상관없는 것이기도 합니다.그런 점에서 나는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한 여인의 사랑의 메시지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은 「삶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이 언젠가 이 산성에 오기를 바랍니다.남한강 푸른 물굽이가 천년세월을 변함없이 감돌아 흐르는 이 산성에서 평강공주와 만나기를 바랍니다.
(성공회대학교 교수) 글.그림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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