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방 한구석에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깔끔히 풀칠한 유카타(浴衣.ゆかた)라는 일본옷을 넣어둔 바구니다.
온천장에 온 사람들은 모두 이 옷으로 갈아입고 대욕장(大浴場)에 간다.목면 홑옷이기 때문에 가볍고 땀도 잘 흡수하여 목욕후의 가운으로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아리영은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일본옷을 입고 나다니는자신의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민망했다.
『목욕하고 와서 식사합시다.』 우변호사도 유카타를 입지 않았다.그것이 고마웠다.그가 일본옷으로 갈아 입으면 크게 곤혹스러웠을 것이다.이 거부감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욕장은 넓고 정결했다.진한 유황(硫黃)온천이었다.유황꽃이라 불리는 연노랑 부유물이 떠돌고 있었다 .
여탕(女湯)과 남탕(男湯)은 따로 마련되어 있으나 안쪽 문을열고 바깥에 나가면 노천(露天)욕장으로 그곳은 남녀 혼탕(混湯)이다.몇몇 여성이 노천 욕장에 드나들고 있었다.용기가 놀라웠다. 목욕하고 오자 방엔 저녁 식탁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
여자 종업원이 단정히 꿇어앉아 낱낱이 식사 시중을 들어준다.불편하기도 하고 우변호사와 단둘이 있고 싶기도 하여 얼른 저녁상을 물렸다.
옆방엔 이미 이부자리가 나란했다.
『이제야 놓여났군.』 우변호사는 으스러지게 아리영을 안은 채이불 위에 쓰러졌다.
『보고 싶었어.』 키스를 하며 그는 아리영의 옷 단추를 풀었다.앞여밈옷이 쉬이 벗겨졌다.속옷도 마저 벗기고 아리영의 「육신」을 손으로 가렸다.
『밤마다 이 언덕 생각을 했어.』 그의 큼직한 손바닥 안에 언덕이 부풀어 일었다.
용수철처럼 일어나 우변호사는 자기 옷도 재빨리 벗고 애무를 계속했다.불타는 단풍 계곡에 물이 흐른다.연분홍 장미석 같은 둥글바위가 흐르는 물에 반짝이며 군데군데 놓여 있다.살아 숨쉬는 바위들이다.
계곡 끝은 연못이다.깊은 동굴로 이어지는 이 연못 바닥에도 둥글바위들이 깔려 있다.
우변호사의 손이 이 둥글바위를 더듬는다.아리영은 단풍 계곡을타고 가는 큰바람 아래 몸을 뒤척인다.마냥 감미한 기다림의 고통.채워도 채워도 또 채워야 하는 탐욕의 연못이 쾌감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다.
『당신은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것같애.「지렁이 천 마리」라는말 못들어봤지?』 우변호사는 몸가락으로 연못을 가득히 채우며 말했다.
글 이영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