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쇼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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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일이어서 부업으로 만족해요. 마치 비밀요원이 된 듯한 짜릿함도 느낄 수 있고요.” 경력 3년 차인 김경희(41·인천시 주안2동) 주부가 꼽은 미스터리 쇼퍼의 매력이다. 미스터리 쇼퍼란 일반고객을 가장해 매장 직원의 서비스나 상품지식 등을 평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기업마다 고객 중심의 경영이 확산되면서 활동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직업이다.


  “오늘 작전명은 ‘남편에게 휴대폰을 선물하라!’로 정했어요.”
  지난달 23일 인천의 한 대형할인매장 1층. 김씨는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먼저 짜야 한다고 귀띔했다. 매장 점원에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서다.
  “미스터리 쇼퍼 활동의 생명은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거예요. 점원의 의심을 사면 일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거든요. 지난번 혼수매장을 방문했을 땐 시어머니와 남편까지 동원한 걸요. 직장일로 바쁜 시누이를 대신해 혼수용품을 구입하러 나온 가족인 양 꾸몄죠.(웃음)”
  이날 김씨가 맡은 프로젝트는 5개 휴대폰 매장에서 A업체의 휴대폰에 대한 매장 점원의 호감도를 조사하는 것. 고객을 가장한 김씨에게 점원이 어느 업체의 휴대폰을 먼저 권유하는지가 첫 번째 체크 사항이다. 고객이 제품을 선택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점원들의 제품 호감도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방문해야 할 매장과 체크 사항, 제품 정보 등은 A업체로부터 이메일로 미리 전달 받았다.
  김씨가 이날 한 매장당 머문 시간은 10~15분. 매장별로 체크해야 할 항목이 수십여 가지에 이르다보니 녹취는 필수다. 초보 시절엔 혹시 의심이라도 살까봐 매장을 나서고 나서야 화장실로 달려가 점원과의 대화 내용을 떠올리며 일일이 적곤 했다. 이젠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 녹취 상태를 확인할 정도로 베테랑이 됐다. 녹음기와 더불어 김씨가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이 휴대폰이다. 매장에 비치된 전체 휴대폰 개수와 A업체 제품의 개수 등 기억해야 할 숫자는 휴대폰 문자로 저장해둔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체크해야 할 사항이 많으니까 민첩성과 관찰력이 필요해요. 평가에 필요한 내용과 반응을 이끌어내는 요령과 융통성이 있어야 하고요.”
  김씨는 ‘남편과 상의한 후 결정하겠다’며 상담 점원의 명함도 챙겼다. 보고서 작성시 증거자료로 제출하기 위한 것이다.
  “점원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엔 부담이 되죠. 업체에 전화해 해당 점원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어요.(웃음)”
  ‘감시 당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는 일부 점원들의 불만이 들릴 때면 속상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제안한 사항이 반영돼 매장의 서비스나 제품의 품질이 나아질 때면 보람을 느낀다.
  일주일에 4~5회 정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김씨의 월수입은 40만~50만원. 프로젝트를 끝마칠 때마다 업무 수행 등급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면 뿌듯하다.
  “고수익은 아니지만 성실하게 경력을 쌓아가면 좀더 전문적인 프로젝트를 맡게 되고 그에 따라 수입도 올라간다”는 김씨는 “외국처럼 국내에서도 미스터리 쇼퍼가 전문직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Tip _ 미스터리 쇼퍼가 되려면
  미스터리 쇼퍼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주로 아르바이트로 활동하다 2002년 리스피아르 조사연구소(www.leespr.co.kr)가 미스터리 쇼퍼 전담부서를 운영하면서 전문 직업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미스터리 쇼퍼가 되려면 전담회사나 리서치 회사에 등록을 해야 한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해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면 된다. 인터뷰 등 자격검증 절차를 두는 곳도 있다. 최근엔 일반 기업체에서 직접 모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리스피아르에 현재 등록된 미스터리 쇼퍼는 7500여 명. 이중 3000~4000명이 활동 경험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로 꾸준히 활동하는 미스터리 쇼퍼는 700여 명정도다.

프리미엄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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