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칼럼>킹목사의 '사랑'되새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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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내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처음 뵌 것은 14세때였다.1962년 내가 다니던 교회의 청소년부 회원들이 시카고의 오케스트라홀에서 열리는 그의 강연회를 보러간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중산층 백인 가정 출신이었다.
그의 인종이 무엇이건간에 킹목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온갖 박해를 견뎌온 위대한 인물이다.그의 가르침은 어느 한 곳에서 저질러진 부정(不正)이 다른 모든 곳의 정의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몬태나주 빌링스 사태를 예로 들어보자.93년 가을 이 지역 유태인 묘비들에 누군가 불미스런 짓을 저질렀다.이어 예배중 흑인 교회의 교민들이 3명의 백인들에 의해 희롱당했다.수주후엔 한 인디언 여인의 집에 나치를 상징하는 기호와 욕 설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뿌려졌다.또 이스라엘 이민이었던 지방 교향악단 지휘자의 집 유리문을 맥주병이 관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빌링스내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침해받았다는 위기감이 번지며 시민들은 들고일어났다.화가동맹의 회원들은 낙서를 지우기 위해 자원봉사에 나섰다.교회 신자들은 유대교의 상징인 6각의 별 모양 옷을 입고 유대교회당 주변의 거리를 순찰하기도 했다.
가톨릭계 고등학교들은 「유태인 이웃들에게 즐거운 하누카(유태인들의 명절)를 빕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장난감 가게들도 「우리 마을에선 안돼」라는 표어를 써붙였다.
킹 목사처럼 빌링스 사람들은 타인들의 처지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자질을 갖췄던 것이다.
새로운 문화적 긴장과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아이들에게 「타인에 대한 이해.화합.관용」이라는 킹 목사의 메시지는 특히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젊은이들의 이상주의가 없이는 인권운동이란 뿌리를 내릴 수 없을 것이다.많은 인권운동 가들이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최근 오시 데이비스가 쓴 『바로 마틴처럼』이라는 책엔 소년시절 킹 목사의 삶이 그려져 있다.14세의 소년 마틴은 비폭력적인권운동에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반대하던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내기에 성공한다.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정의로 움은 우리가 그의 메시지에 귀기울일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나는 사랑으로살기로 결정했다.증오는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짐이다.』킹 목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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