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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안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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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2002년 11월 8일. 유엔 안보리 15개 이사국 대표들이 원탁에 앉았다. 이라크에 대한 최후 경고를 담은 결의안 1441호 표결을 위해서였다. 결과는 15 대 0 압도적 찬성. '후세인이 무장해제 조치를 계속 불이행하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심각한 결과'는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장관의 요구로 '필요한 모든 수단'을 대체한 표현이다.

'필요한 모든 수단'엔 내력이 있다. 1991년 1차 걸프전 때 미국은 전쟁 45일 전 대(對)이라크 무력사용 결의안을 얻어냈다. 중국의 기권 속에 12 대 2로 통과한 결의안은 "후세인의 '중대한 불이행'이 포착되면 미국과 다른 국가들이 자동으로 '필요한 모든 수단'을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고 했다. 이때부터 '필요한 모든 수단'은 전쟁을 뜻했고 '심각한 결과'도 그걸 의미했다. 1441호 결의안 채택 4개월 뒤 전쟁이 났다.

유엔을 우습게 여기는 미국이 이라크 문제 해결에 유엔을 진지하게 고려한 건 전쟁 7개월 전이었다. 2002년 8월 5일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주재로 회의가 열렸다. 토미 프랭크스 중부군 사령관이 최신 작전을 소개했다. '준비-결정적 작전-정권 궤멸'의 3단계, 225일로 구성된 기존의 러닝스타트 작전을 4단계, 157일에 끝낸다는 하이브리드 작전이었다. 듣고 나서 파월은 "군사작전 말고 할 게 많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이 "뭐냐"고 묻자 "유엔 활용"이라고 했다.

그래서 9월 12일 부시는 유엔에서 "새 결의안을 채택하라. 유엔이 행동하지 않으면 미국이 행동한다"고 연설했다. 후에 부시 대통령은 "우리에게 (전쟁)계획과 능력이 없었다면 그런 연설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밥 우드워드 '플랜 오브 어택'). 이런 지난 상황들은 미국이 유엔으로 무대를 옮기려 하면 사태가 심각하다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북한 핵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하자 미국은 '안보리행'을 얘기한다. 이라크 때는 희미한 '대량살상무기 증거'에 기대어 공격했지만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공언하고 있으니 미국으로선 쉬워졌다. 더구나 이라크 전쟁의 주역인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건재하고,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국무장관으로 자리만 옮겼다. 비둘기파인 파월만 안 보인다. 북한은 이 먹구름을 의식하고 있을까.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