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는다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8호 31면

“최악의 순간은 지났다.” 아시아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비즈니스 리더들이 익히 들었을 법한 말이다. 미국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빚어진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고, 침체도 피할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미국 하버드대 주택연구소(JCHS)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올 한 해가 다 끝나기 전에 그 말이 틀렸음을 알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는 “급증하는 가계 파산과 주택 가압류 때문에 최근 한 세대 동안 최악의 경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연구소의 소장인 니컬러스 넷시너스는 “미 주택시장이 아직 최악의 상황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어 주택시장은 “경제가 깊은 침체에 빠지고 집값이 상당히 더 하락한 뒤에야 회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 월스트리트의 전문가들은 미 경제가 올해 1.4%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전망치다. 그런데 주택가격이 더 떨어져 미국인들이 소비를 더 줄이면 올 성장률은 0.4~0.9% 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익히 잘 알고 있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최근 “미 경제가 조만간 회복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경기 회복이 내일이나 다음달, 내년에도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주 기준 금리를 2%로 동결하면서 “인플레이션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아주 크다”고 밝혔다. 조만간 기준 금리를 올릴 수도 있음을 시시한 것이다. FRB가 인플레 사냥을 위해 금리를 올리는 쪽으로 돌아서면 집값은 더 곤두박질하고 소비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FRB가 긴축을 하지 않아도 탈이다. 요즘 글로벌 자금흐름에 비춰 미국의 저금리 정책으로 창출된 유동성의 귀착지는 아시아다. 핫머니 유입이 아시아로 밀려들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통화와 물가 관리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미국인들의 소비를 옥죄는 요인은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LA타임스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날이 뛰는 휘발유값 때문에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열에 일곱에 이른다.

강 건너 불일까. 아직도 아시아 경제가 미국 경제의 불황에도 잘 굴러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아시아 내부의 소비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미국인 소비가 줄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중국이 얼마나 미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고, 아시아 다른 나라들이 연간 10% 이상 성장하는 중국 시장에 얼마나 목매고 있는지를 무시하는 시각이다. 미국인의 소비가 줄어들면 중국의 수출 촉진 정책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금도 기준 금리를 소비자 물가상승률보다 낮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수출과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다 재정지출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최대 고객인 미국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소비를 더욱 줄이면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다. 중국에서 생산된 평면 텔레비전과 컴퓨터, 휴대전화, 각종 의류 등의 판매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 그 파장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된다.

결국 미국 집값의 지속적인 하락이 아시아 경제의 앞날을 가늠하는 잣대인 셈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